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권오준 회장의 운명은?

필자는 대구에서만 기자 생활을 했기에 포항 발령을 받고도 본부 사옥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섬안큰다리 부근'이라는 전임자(前任者)의 말을 듣고 택시를 타고 왔던 때가 4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대구와 포항의 풍토가 전혀 다른 점에 무척 놀랐다. 대구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처져 있는 것 같은데, 포항은 훨씬 더 심했다. 심하게 말하자면 정치권과 인맥을 동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고, 이권과 업권을 둘러싼 특혜와 뒷거래가 횡행하는 도시였다. 이명박 정권이 퇴장하면서 그 정도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소수 기득권그룹의 적폐와 모순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 번째 놀라운 것은 그 원인 제공자가 포스코라는 점이었다. 지역 토호들은 '황금알을 낳는' 포스코 외주사나 관련사를 하나씩 갖고 있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운영권을 얻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어쨌든 대를 이어가며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외주사 운영자 중 일부는 그렇지 않지만, 많은 이들은 자기들끼리 좋은 술집에 가고 골프를 하고 해외여행을 갔다. '그들만의 리그'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부의 축적이 불투명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비롯됐는데 이웃에 대한 애정이 있을 턱이 없다. 심지어 포스코 외주사나 관련사를 운영하면서 정치권'공직에 진출하려고 시도하고, 언론사까지 인수해 사장이니 회장이니 하면서 어깨에 힘을 주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외주사 운영은 부업이 되고, 포스코에 대한 을(乙)이 갑(甲)으로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풍경도 심심찮다. 편법과 특혜, 부조리가 횡행하다 보니 포스코를 '뜯어먹으려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재계서열 7위인 글로벌 기업의 협력사 운영 방식이 이 정도라고 한다면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라는 이유로 역대 정권과 정치권이 지나친 간섭과 압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협력사 운영권은 '지역 토호' '정치권에 줄 댄 자' '퇴직 임원' 등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포스코의 어려움은 세계 철강경기 탓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경영 방식도 한몫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오준 회장은 15일 외주사 선정 방식을 공개경쟁으로 전환하는 대담한 쇄신안을 내놨다. 정치권, 토착세력 등 외부 입김을 타고 세습 혹은 특혜를 입은 업체에 대해서는 협력 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도 했다. 포스코가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시의적절한 조치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권 회장의 쇄신안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않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들의 저항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다. 포항 사회에는 '권 회장이 먼저 무너질 것'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얘기가 많이 나돌고 있고,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도 꽤 있다. '전임 정준양 회장의 잔재도 떨어내지 못하면서 기존 관행을 고칠 수 있을까'하는 일부의 비판도 있다. 이쯤 되면 권 회장과 기득권 세력과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권 회장은 '어려워도 단호하게 밀어붙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하는데,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포스코가 기업 경영의 본령인 효율성과 성과를 추구하려면 협력사 운영을 쇄신하고 구태와 모순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압과 간섭, 모략 등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겨내고 혁신을 이루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우리 사회가 건전한 상식과 윤리 의식에 따라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권 회장의 쇄신안에 대해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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