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입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심지어 제 자신과 거리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고,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할 수 있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싶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하고 싶은데 방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울해지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으며, 대학은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고, 제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는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해법= 이번 사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나의 삶의 가치와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등을 고민할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나가야 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자기가 어느 길을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냥 돈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단편적인 얘기를 상담과정에서 듣게 될 때, 마음 한 곳이 텅 비는 느낌마저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저녁노을을 보며 한 편의 시 구절을 읊조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의 삶의 의미를 친구들과 나누는 시간 없이 '입시경쟁에서 학업만 강요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청소년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갈등과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청소년기에는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급격하게 찾아오는 데 반해 극심한 입시에 시달리면서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건전한 가치관의 형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로 인해 청소년들은 불안, 우울, 분노 등의 부정적 정서들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대인관계의 어려움, 가출, 자살, 중독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갈등과 고민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서 자아정체감과 관련이 깊습니다.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말합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자신에 대한 느낌이나 주장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일관성 있게 지속되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청소년기에 특히 자아정체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정체감과 관련된 변화들이 갖는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시기며, 자신에 대한 느낌의 재구조화나 재조직화가 청소년 시기에 일어나서 그 변화를 매우 예민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례의 학생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발달시키는 과정 중에 "나는 누구지?" "나는 어떤 존재이지?" "나의 가치는?" 등에 대해 고민하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기는 자아를 발견하고 구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청소년기는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있으면서 과거로부터 일관되게 유지되는 자아의 모습도 존재하며 또한 생물학적 성숙과 더불어 지적'심리적 성숙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구축해야 하는 시기이지요. 따라서 대부분 청소년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 이미지, 삶의 방향 등을 고민하며 자아를 발달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자아정체감 형성을 돕기 위한 방안들을 찾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자아정체감 형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객관화입니다.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이점과 불리한 점을 그대로 인정하는 성숙한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혼자서 사색하며, 자신이 뭘 할 때 가장 좋아했는지 돌아보는 것도 자신을 좀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둘째, 자기수용이 요구됩니다. 자신의 좋은 면뿐 아니라 좋지 않은 면까지 인정하고 사랑하여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자기수용은 자아정체감 정립에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자신에 대한 단점을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점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셋째, 실행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계획을 실행하는 슬기로운 지혜와 참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성취들은 결과적으로 자아정체감을 굳건하게 만들어가는 바탕이 됩니다. 특별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심취하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넷째, 남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요구됩니다. 이번 사례의 학생이 상담을 요청한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 주위의 대상에게 마음을 열고,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쉽게 바람직한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정체감의 형성은 청소년기에 시작하고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동기의 다양한 경험과 동일시됩니다. 자기 개념에 기초하여 청소년기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달해 갑니다. 즉, 자아정체감 형성은 일시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조금씩 이루어나가는 중요한 발달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가족들이 모두 시원한 개울가에 발 담그고, 수많은 색깔로 덧칠해진 나와의 진정한 만남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만히 들여다보고, 나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면, 긍정적인 사고로 미래를 향해 구체적인 실행을 하나씩 완성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진현숙(경북대 아동가족학과 상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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