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9] 비번 날 출동은 싫어요!

비번 날 걸려오는 비상동원령 전화는 반갑지 않다. 어느 겨울날 아내와 데이트 도중 걸려온 비상동원령 전화에 한숨을 쉬었지만 출동을 위해 아내를 집에 급히 데려다 줄 수밖에 없었다.

언제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방관으로 근무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눈, 비가 오지 않아 땅은 메말랐고 산불도 잇따랐다. 그것도 당번 근무 날이 아닌 비번 날에 말이다.

그때는 집사람과 연애 시절이었다. 그날도 집사람과 데이트하려고 저녁 6시에 만나 저녁 먹으러 가던 중이었다. 저녁 6시 조금 넘었을 때 사무실 번호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이미 며칠 전에 산불화재로 비번 날 동구 혁신도시 공사장에서 초례봉 가는 길 산 중턱에서 불이 나 출동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일찍 진화되어 2시간 만에 집에 올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그때 일이 스쳐 지나갔고, 오늘도 '설마 큰불은 아니겠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금 공산댐 인근에서 산불이 크게 나서 전 직원 비상동원령이 내려졌어요! 지금 즉시 사무실로 오세요!"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집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괜히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빨리 마치고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사람을 집에 내려준 뒤 사무실로 급히 돌아왔다. 벌써 다른 직원들은 사무실에 도착해서 산불 진화장비와 개인 보호장비 등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장비를 챙기고 직원들과 같이 현장으로 향했다. 공산댐 인근에 오니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산으로 불길이 벌겋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오늘 집에는 다 갔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도착 즉시 지휘관에게 보고한 후 신숭겸 장군 유적지 방향으로 현장배치 지시를 받았다. 갈고리를 들고 신숭겸 장군 유적지 방향으로 열심히 산을 올랐다. 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영하 10℃의 날씨답게 매우 추웠다. 그러나 산에 오를수록 불길의 열기가 몸을 덥혀 주고 있었다. 여기저기 번져 가는 불길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자 어느덧 불길 안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발바닥이 뜨거운 것 같아 발밑을 보니 신발이 흐물흐물 고무 녹듯이 변형이 오기 시작했다. 갈고리로 바닥을 헤쳐 불씨를 없애고 그 부분을 밟고 계속해서 큰 불길을 잡으러 앞으로 향했다.

재래식 방법으로 갈고리를 가지고 땅을 뒤집어가며 열심히 불을 껐다. 헬기가 출동하면 진화가 쉬우련만 밤이라 출동불가라 한다.

열심히 갈고리질을 해서인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을 가리킨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우리 쪽은 큰 불길이 잡힌 것 같은데, 다른 쪽은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하산하여 다음 임무를 받기 위해 현장지휘본부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다행히 주린 배를 달래줄 컵라면이 우리를 반겼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후~후~' 불어먹는 컵라면 맛은 그 어떤 맛있는 음식의 맛과도 비교되지 않았다.

잠시 휴식과 허기를 달래고 또다시 부여받은 임무를 위해 불길이 잡히지 않은 반대쪽 산으로 향했다. 처음 도착할 때보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갔고, 중간 중간 멈춰 긴 숨을 몰아 쉬었다. 여기저기 퍼져 있는 잔불씨를 여기서도 재래식 도구 갈고리를 이용하여 땅을 뒤집어가며 열심히 불을 꺼 나갔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자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저 멀리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여러 대의 헬기가 내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날이 밝아 출동이 가능해진 헬기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구세주가 온 것처럼 기뻐 나는 하늘을 향해 양팔을 흔들었다. 여러 대가 동시에 하늘에서 물을 뿌리니 금방 불길이 잡혔다. 그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우리 팀은 장비를 챙겨 사무실로 돌아왔다.

피곤할 법도 한데 추운 날씨 탓에 사무실로 오니 안락함마저 들었다. 전일 출동 대기 근무자들도 퇴근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고생했다며 위로를 한 뒤 전일 근무자들은 퇴근하고 우리 팀은 본연의 출동을 위해 장비점검을 마무리하였다. 소방공무원으로 일해온 지 수년이 지난 오늘도 이렇게 소방대원으로서 하루하루 업무에 충실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김동철/대구북부소방서 칠성119안전센터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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