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규정인가, 사람인가

대구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분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텃밭을 만들어두고 채소를 가꾼다고 한다. 학교 건물 옥상에 학반별로 상자를 만들어 흙을 채운 후 거기에 원하는 농작물을 기른다는 것이다? 햇살이 잘 드는 건물 옥상이다 보니 농사가 제법 잘 된다고 한다. 올봄에는 상추도 심고 오이도 심었다. 풋고추와 가지도 몇 포기씩 심은 반이 있었다. 휴대전화 사진으로 보여주는 풍경을 보니 오이와 상추가 제법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비는 시간 짬짬이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옥상에 올라가 자기 반이 맡은 채소에 물을 주면서 지내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고 하셨다. 오이와 고추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한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렇게 기른 채소들을 아이들이 먹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싱싱한 상추를 몇 잎 뜯고 오이를 따 점심 급식 때 아이들에게 주려 했으나 윗분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기른 먹거리들을 선생님들이 나눠서 집으로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그 채소들을 기르느라 땀을 흘린 아이들은 얼마나 아쉬웠을까. 자신들이 직접 기른 상추로 쌈도 싸먹고 신선한 오이도 따 먹으며 느끼게 될 아이들의 기쁨과 보람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까.

다른 학교의 경우 학교 텃밭 가꾸기 체험도 하고 급식 시간에 자신들이 기른 채소를 나눠 먹기도 하며 수확의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없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학교에서는 왜 그러지 않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요즘은 지역마다 급식관리지원센터가 있어 아이들이 먹는 음식 하나하나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 학교에서 그런 결정을 하신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직접 기른 채소가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먹거리이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아이들이 학교 건물 옥상에서 물만 주면서 직접 키운 채소들이 더 건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선생님들은 그 먹거리들이 안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으리라. 그 먹거리들은 정식(?) 경로를 통해 공급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규정'은 모든 것을 관통하는 대원칙이다. 애매한 경우가 있을 때면 "규정이 그렇습니다", 이 한마디면 된다. 그 학교에서의 그런 결정도 그런 과정에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정성들여 기른 채소가 정말 좋은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받게 될 책임 추궁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분들은 '규정대로' 결정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 규정에는 사람이 빠져버렸다. 이제 사람은 규정을 벗어나 결정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것이 사람을 위한 것일까, 규정 그 자체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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