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존립은 정보기관 정보역량서 좌우
해킹의혹 무차별 폭로전은 자해행위
비밀 원칙·진상규명 사이 균형 잡아야
비공개 국회정보위서 의혹 검증하면 돼
정보기관 하면 미 중앙정보국 CIA가 대표적이지만 미국에는 숱한 정보기관이 있다. 국가안보국(NSA: National Security Agency)도 그중 하나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통신감청시스템인 '에셜론'을 운용하는 것으로 밝혀져 한때 유명세를 탄 기관이다. 미국에서 NSA는 일종의 언어유희 대상이다. NSA의 의미가 국가안보국이 아니라, "어떤 말도 하지 말라(Never Say Anything),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라는 것이다. 진담에 가까운 농담이다. 정보기관의 속성을 정확하고 간략하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원은 배우자에게도 함구할 정도로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정보기관도 베일에 싸인 존재로서 문제가 불거져도 침묵으로 일관해야 한다. 정보기관(원)에 대한 철저한 보호는 국가운영을 위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는 이유도 국가의 존립이 정보기관의 정보역량에 달려 있음을 웅변한다.
이른바 국정원 해킹의혹 사건은 그런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고전적인 불문율이 깨진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권, 특히 야당과 국정원이 서로 앞다투듯 정보를 폭로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때로 해킹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한 해킹인지, 국민 대상 해킹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대뜸 전 국민 사찰 운운하며 의혹을 사실처럼 적시하고 나섰다. 결국 해킹 대상은 '중국 내 한국인'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신원과 가족관계, 담당 업무는 물론 임무수행 방법 등도 무차별 폭로되고 있다. 국정원의 즉각적인 대응은 또 다른 정보 공개의 결과를 낳고 있다. 야당은 30가지 이상의 자료를 국정원에 요구하고 있다. 존재조차 언급되지 말아야 할 국정원 직원 일동이 집단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초유의 일까지 생겼다. 모두 이성을 잃고, 우리의 정보역량을 스스로 갉아먹는 자해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의 정보역량을 탐지하려는 것은 북한 등 잠재적 적대국가만이 아니다. 우방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라들이 정보수집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관은 합법적 신분의 스파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첩보들이 모여 중요한 정보가 되는 법이다. 하물며 최근 폭로된 내용들은 모두가 알토란 같은 정보들이다. 누구를 이롭게 할 것인지 불을 보듯 뻔하다.
야당은 장외에서 펼치는 무분별한 폭로전을 중단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면 국민을 상대로 불안감을 부추기는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 국정원 역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을 멈추어야 한다. 정치에 개입하고 도청을 자행한 과거의 업보임을 인식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해킹 의혹의 진상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비밀이라는 말로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안들처럼 모든 걸 공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보기관의 비밀 원칙과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요청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비공개로 회의를 열 수 있는 정보위원회는 일종의 절충점이다. 국회의 모든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반면 정보위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여야는 즉각 국회정보위를 소집해야 한다. 비공개로 보고를 받고 질의'응답을 통해 불법 해킹 여부를 검증하면 된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으면 청문회든 수사든 현장방문이든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제쳐놓은 채 진흙탕 싸움으로 세월을 보낼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생길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이 곧 그 나라의 역량이다. 우리 정치권은 문제 해결은커녕 모든 일을 정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신기한 일도, 반가운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메르스에 이어 또 한 번의 질문에 맞닥뜨리고 있다. 우리에게 과연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경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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