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하면 그 내용이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형식의 중요성은 국가 간은 물론 개인 간의 일상도 지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성인군자는 언행을 삼갔다. 유가의 경전인 예기(禮記)에서도 일찍이 군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의 몸가짐을 '구용'(九容)으로 규정했다.
'발걸음은 무겁고(足容重), 손 모양은 공손하며(手容恭), 눈은 단정하고(目容端), 입은 고요하며(口容止), 목소리는 조용하고(聲容靜), 머리 모양은 곧으며(頭容直), 기상은 엄숙하고(氣容肅), 서 있는 모습은 덕스러우며(立容德), 얼굴빛은 장엄한(色容莊) 것'을 이른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의 앉는 자세인 '양반다리' 또한 내면을 표현하면서 외형을 정제하는 중요한 형식이었을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정국을 주도한 명문 집안 출신으로 대제학을 지내고 판서의 벼슬을 역임했으며 문학적 자질도 뛰어났던 홍낙명은 희한하게도 양반다리를 하지 못했다. 온돌문화에 익숙한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던 양반다리를 양반 중의 양반이 하지 못했으니 그 답답한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는 양반다리 자세를 추스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자신의 특이한 신체 구조 때문에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명지 하나가 펴지지 않아도 무슨 수를 쓰든 고치려 들지만, 마음이 남과 같지 못한 것은 걱정할 줄 모르니, 작은 것만 알고 큰 것은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는 맹자의 말씀을 위안으로 삼았다. 비록 양반다리를 하지는 못했지만, 남보다 밝은 눈과 귀를 가지고 이치를 분별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녔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요즘은 입식문화의 생활화로 책상다리도 제대로 못 하는 신세대들이 많지만, 아무튼 양반다리는 조선시대 지도층인 양반 선비들이 앉는 기품있는 자세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를 방문하면서 취한 '양반다리'가 새삼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가곡 선구자에도 등장하는 해란강변 조선족 마을을 찾은 시 주석이 온돌방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의자 문화가 몸에 밴 중국의 한족이 양반다리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시 주석의 이 형식에는 무슨 내용을 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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