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친선특급 참가단은 열차 안에서만큼은 한'러 친선이 아닌 한'한 친선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각별한 친분을 쌓고 있다.
250여 명의 참가단을 태운 열차는 22일 현재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를 떠나 네 번째 기착지점인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구간 거리 1천850㎞, 29시간의 장도이지만 참가단은 지루한 기색 없이 식당칸에서 열리는 강연을 듣거나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교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친선특급 참가단의 면면은 다양하지만 민간 외교 사절단이라는 역할에는 차이가 없다. 직업, 세대를 뛰어넘어 친선특급 승객이라는 공통점만으로도 둘도 없는 길동무가 되고 있다.
경상북도 철의 실크로드 탐사대 김헌린(55) 팀장은 육상과 해상에 이어 철길까지 3개 루트의 실크로드를 모두 경험하게 된 참가자다. 김 팀장은 2013년 육상 실크로드와 이듬해 해양 실크로드 탐사대의 운영과 행정지원을 맡았다. 이번에도 21명의 대원을 이끌고 철의 실크로드에 올랐다.
원래 경북도의 마지막 실크로드 완성 지도는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아닌 북한을 관통하는 한반도 종단이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실현되지 못해 외교부와 코레일만 이번 친선특급에 공동주관을 맡았다. 그는 "한반도 종단 계획은 아직도 유효하며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언제든 출발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래의 유라시아의 주역이 될 청년들도 지금 친선특급과 함께 달리고 있다. 윤승철(27) 씨는 경북도와 인연이 깊다.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경북도 실크로드 원정대에 이어 이번 철의 실크로드 탐사대까지 세 번 연달아 청년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도전정신은 초인적이라 할 만하다. 이집트 사하라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중국 고비 사막, 남극 마라톤 등 세계 4대 극지 마라톤을 3년 전에 모두 완주한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이런 특별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참가하지 못한 다른 청년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용훈(22) 씨는 대륙의 기상을 품은 원정대원이다. 열정 하나를 무기로 친선특급 국민공모에 응해 1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열차표를 손에 쥐었다. 그의 이력은 독특했다. 고교(대구고)를 갓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중국 허난성 나이양 지역 청소년들의 생활상을 접하고는 마음이 흔들렸다. 미래가 없고 꿈이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는 그곳에 정착해 교육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지 초등학생과 중학생, 대학생들에게 사물놀이, 한국어 강좌, 뮤지컬, 합창을 가르치며 한국 문화를 알리고 꿈을 심어주는 데 젊음을 바치고 있다. 그는 "친선특급 참가자들 가운데 제가 가진 꿈과 열정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30년을 의료 봉사에 매진해온 의사도 참가해 훈훈함을 더해 주고 있다. 울진군 평해읍에서 개인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규 박사는 의료진 자격으로 참가했다. 해외 난민촌, 재난지역을 다니며 사랑의 의술을 펼쳐온 이 박사는 병원 문을 닫고 진료 장비와 치료약을 챙겨 특급열차에 의무실을 차렸다. 그는 (사)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이기도 하다. 북만주 항일 유적지를 탐방하는 청산리 역사 대장정 사업을 벌이고 있을 만큼 우리 민족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높다. 그는 "항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열악한 것 같다"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우리 젊은이들이 앞장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봉길(60)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소장도 친선특급의 승객이다. 의성이 고향인 그는 지역실정에도 밝았다. 특히 경북도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신 소장은 "친선특급은 민간외교 사절단이나 마찬가지"라며 "큰 틀에서 국가 간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외교이듯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경북도로서는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도약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철도 전문가도 있다. 박은경 동양대 교수는 러시아의 철도교통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에서 23일 한'러 철도교통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다. 남북철도와 대륙철도의 연결을 대비한 '철도 에라스무스 플랜'을 제시할 예정인 박 교수는 "한국, 북한, 러시아, 몽골, 중국 등 5개국 철도 전공 대학생들이 상호 교육프로그램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후손도 선조들이 일본군과 싸웠던 땅인 시베리아를 횡단 중이다. 친선특급에 특별 초청으로 참가한 안중근 의사의 6촌 손녀 안현민(22) 씨는 지난 15일 우스리스크 지역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안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안 의사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이곳에 와 헌화를 하게 됐다"며 "차표 한 장으로 대구에서 이곳까지 올 수 있는 통일의 날이 빨리 오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안 씨는 행사 도중 펼쳐질 공연에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을 부를 예정이다. 헤이그 특사의 일원인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 조근송(60) 씨와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48) 씨도 이번 친선특급을 통해 선조들의 넋을 기렸다.
평양주재 독일대사관 2등 서기관 얀롤프 야노프스키 씨와 평양 과학기술대 이병무 치과대학 설립학장도 열차에 탑승 중이다. 길게는 수년씩 평양에서 생활한 이들은 남북한의 화합을 바라는 심정으로 친선특급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 안에서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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