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과 일본의 기억

우지고 츠요시가 쓴
우지고 츠요시가 쓴 '시인 윤동주로의 여행'.

※책 사진을 꼭 넣어주세요~~~^^*

윤동주의 '새로운 길'과 일본의 기억

일본에 '다이쇼(大正), 혼고(本鄕)의 아이들'(1977)이라는 책이 있다. 내용은 동경의 혼고 지역에 살던 일본인이 1920년대 혼고 지역에 대한 기억을 적은 것이다. 책 시작 부분에 잠시 조선의 대구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1911년, 소학교 1학년생이었던 지은이는 아버지의 새 부임지인 대구로 가기 위해서 가족과 함께 일본을 떠난다. 동경 신바시역에 배웅을 위해 모인 친척들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눈물바다를 이룬다. 그들이 들은 대구라는 곳은 '호랑이가 살고 있고' '빗물을 받아서 먹는',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당시 제국 일본에서 통용되고 있던 식민지 조선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소년은 4년쯤 조선에서 머물다가 일본으로 돌아간다. 조선에 관한 언급은 더 이상 없지만, 소년 시절 4년을 보낸 조선에 대한 기억은 평생 그와 함께했을 것이다. 그 기억 중에는 '일본의 일부가 된 조선'에 대한 우월감도 있었을 것이고, 소년기 한때를 보낸 대구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기를 겪으면서 일본과 조선의 기억은 이처럼 겹겹이 연결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현해탄을 건너와 조선을 경험했으며, 또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특히 근대적 교육을 받으려는 조선의 많은 엘리트들이 일본 대학에 진학하여 흔적을 남기고 돌아왔다. 36년, 식민지 기간 동안 일본에서도 이처럼 조선에 대한 기억이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에 대한 일본인의 기억은 지배자 입장에서 축적된 것만은 아니었다. 스물일곱 나이로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죽은 조선인 윤동주의 시를 발굴해서 소개하고 연구한 사람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근무하던 일본인이었다. 우지고 츠요시(宇治鄕穀)라는 이 일본인은 도지샤(同志士)대학 시절 우연히 접한 윤동주의 시 한 편에 마음이 묘하게 흔들려 윤동주 연구를 시작하였다. 윤동주라는 조선인의 문학에 대해, 그가 살았던 나라와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서 30년에 걸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윤동주의 시 한 편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은 조선 역사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일본과 조선의 역사 인식과 상호 이해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나의 한국, 조선연구 노트'라는 부제를 단 '시인 윤동주로의 여행'(2002)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1941)이라는 윤동주의 시 한 구절처럼 윤동주의 삶은 일본인의 마음속에 계속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갔다. 윤동주의 시 한 편이 우지고 츠요시라는 일본인에게 조선에 대한 기억과 이해를 만들고, 그 기억은 그의 대학 후배에게 전해지고, 그 후배의 기억이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연구자에게 전해졌다. 이처럼 식민지 시기 조선에 대한 많은 기억이 역사를 복원하고, 일본과 한국 간의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집단자위권 법안 강행에 대해 일본 내외의 여론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일본인 모두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많은 일본인이 조선이나 한국에 대한 어떤 종류의 기억인가를 가지고 있지만, 그 기억은 대부분 중립적이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와 한국에 대한 이처럼 중립적인 기억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에 한일 관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윤동주를 죽게 만든 사람도 일본인이었지만, 윤동주와 조선의 역사를 일본인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낸 사람도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정혜영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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