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일본식 한자어

조선총독부가 1920년에 만든 조선어 사전에 따라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라는 것이 오랫동안 맞는 말인 것처럼 통용됐다. 그러나 국어학자들의 연구와 분석에 따르면 일본이 사전을 만들면서 우리 말이 있는 데도 한자로 바꿔 실었다고 한다. 1957년 한글학회가 만든 우리말 사전의 한자어 비율은 54% 정도이고 국립국어원의 현대 국어 사용빈도 조사에 따르면 한자어는 35% 정도였다. 이 가운데 거의 쓰지 않는 한자어를 빼면 비율은 더욱 줄어든다.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25% 정도는 일본식 한자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원래 있는 낱말이 아닌데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이 만든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방충망, 철사, 혼담 등 많은 낱말은 현재 일본에서는 아예 쓰지 않는 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것도 있다. 이들 낱말의 대다수는 일본식 한자어인 줄도 모른 채 흔히 쓰인다.

좋은 우리말이 있는 데도 구태여 한자어를 고집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영향으로 권위적으로 보인다. 또한, 한자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게 함으로써 전문성을 강조하고, 학식 차별 효과도 노린다. 과거 법원, 검찰이 문서를 작성할 때 어려운 한자어를 쓰거나, 다른 외국어의 사례지만 의사끼리 대화나 환자의 증세를 기록할 때,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인쇄 매체인 신문도 다르지 않다. 기사나 제목에서의 한자어 사용은 두드러진다. 바꿀 수 있는 우리말이 있지만, 제한된 지면에 좀 더 많은 내용을 넣으려면 뜻글자인 한자로 줄여 쓰는 게 효율적이어서다. 그나마 요즘은 특별한 경우만 괄호 안에 한자를 함께 넣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한자를 독음(讀音) 없이 그대로 써 한자를 모르면 아예 신문을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법무부가 형법과 민법에 남아있는 일본식 한자 표현을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에 들어갔다. '경(輕)한'(가벼운) '모해'(謀害, 모함하여 해침) '개전'(改悛, 뉘우침) '작량감경'(酌量減輕, 정상참작감경) 등이 대상이다. 법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한자어 순화 작업을 벌였는데 아직 무슨 뜻인지도 모를 낱말 투성이다. 더구나 일본식 한자어가 법이나 판결문 등 공식 문서에 여전하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그만큼 모자랐음을 뜻한다. 한자어 등 외래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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