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담은 다소 특별하다. 이명박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과 참여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토론은 아니다. 주제가 한정되어 있는 데다 한쪽은 주로 묻고 한쪽은 주로 답한다. 하지만 그 나름 의미가 있는 만남이 아닌가 한다.
사실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이 있다. 젊은 시절 같이 시민사회 활동을 하기도 했고,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미래비전을 그리기 위해 박세일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를 좌장으로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이후 서로 다소 다른 정책 방향을 추구하면서, 또 성격이 다른 정부에서 일을 하면서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일에 갇혀 있기도 했지만 스스로들 선을 그은 것 같기도 하다. 두 정부가 모두 지나간 지금에서야 서로 다시 만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아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그를 이 대담에 어렵게 불러내었다.
충남 보령 출생, 뉴욕주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이화여대 교수를 지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시정개발연구원 원장을 지냈고, 대통령 선거 때는 정책캠프를 만들어 그를 도왔다. 인수위 시절 인수위원을 지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지금은 다시 이화여대 교수로 돌아가 있다.
김병준: 현안부터 물어보자. 정부'여당이 노동 개혁을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노동계는 적게 주고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백용호: 정권 초기에는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했다. 노동자들도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러다 이제는 경제 활성화를 이야기하면서 노동 개혁을 들고 나왔다. 정책의 지향점이 자주 바뀐다. 그러나 어쨌든 좋다.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김병준: 잘 되기는 하겠나?
백용호: 저항과 마찰이 일어나면 경제와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면서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서로 소통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김병준: 사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물러날 곳이 없다. 실업급여 체계나 평생교육 체계가 약하다. 이런 안전망이 없으니 떨어지지 않으려 있는 힘, 없는 힘 다 쓰게 된다.
백용호: 갈 길이 멀다. 길게 보고 조금씩 개선하면서 앞으로 가야 한다.
김병준: 가계 부채도 문제다. 정부가 갑자기 대출을 조이겠다고 한다. 옳은 길이지만 걱정이다. 버티지 못할 사람들이 쏟아질 것 같다.
백용호: 좀 더 일찍부터 신경을 썼어야 했다. 사실 미국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다. 따라서 금리 인상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되는데, 이 경우 가계 부채는 그야말로 폭탄이 된다.
김병준: 그동안 통제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더 빌려가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왜 그랬을까?
백용호: 내수 경기 살리는 데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특히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 애썼다.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완화한 게 그런 것 아니겠나.
김병준: 부동산으로 경기를 살릴 수 있나?
백용호: 당연히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늘지 않는다. 주택 수요가 늘 리 없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1, 2인 가구가 늘면서 수요가 늘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이마저도 한계에 달하고 있다. 일본을 봐라. 공가, 즉 빈집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김병준: 가계 부채도 그렇지만 늘어나는 국가 부채도 문제다.
백용호: 그래도 아직은 건전한 편이다. 2012년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이 일본보다 앞섰던 적이 있다. 바로 이 재정건전성 때문이었다.
김병준: 하기야 일본은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240%나 된다. 미국도 100%를 넘었다. 이에 비해 우리는 35% 안팎이기는 하다.
백용호: 사실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세금과 4대 보험 등을 적게 낸다. 국민부담률, 즉 이렇게 내는 돈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이 24% 조금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비해 7%나 낮다. 이렇게 적게 내면서 빚도 많지 않았다는 게 놀랍지 않나. 우리 경제의 강점일 수 있다.
김병준: 문제는 그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두 더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용호: 대안이 없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지출을 줄여야 한다. 늘 하는 논쟁이지만 너나없이 다 주는 보편적 복지 같은 것은 곤란하다. 잘사는 사람이 왜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나. 대상도 줄여야 하고, 전달체계를 합리화해서 중간에 새는 것도 막아야 한다.
김병준: 그게 쉬울까? 줄여야 할 대상이나 사업 하나하나에 신념의 문제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백용호: 그래서 우리 정치가 걱정이다. 그런 것을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고 선거 때만 되는 오히려 더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내년 선거도 그럴까 걱정이다.
김병준: 그렇게 줄인다 해도 끝내 더 거두지 않고는 어려울 것 같다.
백용호: 더 거두는 것이 지출을 줄이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3대 세목의 하나인 소득세만 봐도 그렇다. 흔히 최고세율을 더 올려라 하는데 현행 최고세율이 38%이다. 여기에 지방세 등의 부가세가 붙으면 40%가 넘는다. 여기서 더 올린다고? 갖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서 과연 얼마나 더 거두겠나.
김병준: 그래도 우리는 소득세를 너무 적게 거두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3.7%밖에 안 된다. OECD 국가 평균은 8.6%이다. 약 5% 차이인데 국내총생산의 5%면 약 70조 원이 되는 금액이다.
백용호: 맞다. 하지만 그건 많이 버는 사람이 덜 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면세자 비율이 너무 높아서도 그렇다. 지금은 조금 내려왔지만 많을 때는 경제활동인구의 40% 이상이 소득세 면세자였다. 이런 나라는 거의 없다.
김병준: 하긴 그렇다. 중간 계층이 내는 소득세도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다.
백용호: 그러니 충분할 만큼 거두자면 이들 면세자들이나 중간 계층에서 더 거두어야 하는데 어느 정치인이나 정당이 이를 할 수 있겠나. 쉽지 않다.
김병준: 법인세를 더 거두는 것은 어떤가?
백용호: 다 낮추는 추세인데 우리만 올릴 수 있겠나. 더구나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다만 실효세율, 즉 실제 적용하는 세율이 낮은 부분은 문제다. 명목세율이 22%인 데 비해 대기업의 경우 실효세율이 11~17% 정도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야 한다.
김병준: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최근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실효세율이 왜 그렇게 낮나?
백용호: 각종의 감면 규정 때문이다. 이를 검토해서 바로잡을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 사실 이러한 감면 조치들은 조세 정의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 또한 이런 게 많을수록 기업이 빠져나갈 소지도 많아지고 부정부패나 변칙의 소지도 커진다.
김병준: 어째서 그런가?
백용호: 해석의 자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조세라는 것은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맑아진다.
김병준: 부가가치세는 어떤가? 이건 좀 올릴 여지가 있나?
백용호: 이것 역시 쉽지 않다.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는 데다 당장 간접세 내지는 소비과세가 가지는 역진성도 문제가 된다. 세율이 높을수록 없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김병준: 결국 조세 수입을 늘리기는 어렵다?
백용호: 그렇다.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지출 부문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김병준: 탈세 방지와 관련해서, 우리 경제에 있어 지하경제의 비중이 어느 정도 되나?
백용호: 말 그대로 언더그라운드다. 추계하기 어렵다. 적게는 국내총생산의 20%, 많게는 30%까지 이야기한다. 20%면 300조 원, 30%면 450조 원 정도 된다. 여기에 국민부담률 24%를 곱하면 약 70조원에서 110조원이 된다. 다 잡으면 그만큼 더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김병준: 불가능한 일이다. 또 무리하면 영세 상인들까지 힘들게 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도 출범 때 '지하경제 양성화'를 내세웠다. 많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성과는 별로다.
백용호: 이것도 일거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세청장 재직 시절 현금영수증을 더 많이 주고받게 하고, 30만원 이상 거래하면서 영수증을 안 주면 신고하게 하는 등의 노력을 해 봤다. 이런 꾸준한 노력을 통해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김병준: 공정거래 이야기를 좀 하자. 이번에 삼성과 엘리엇 간의 싸움을 어떻게 보셨나?
백용호: 삼성의 전략이 좋았던 것 같다. 엘리엇을 투기자본으로 각인시킴으로써 국민정서를 삼성 쪽으로 이끌었다. 어떻게 보면 '먹튀'로 각인된 론스타의 덕을 본 것 같다. '이제는 투기자본이 삼성까지 먹겠다고?' 하는 여론이 일었다.
김병준: 삼성도 문제가 있으니까 엘리엇이 파고든 것 아니겠나?
백용호: 그렇다. 지배구조에도 문제가 있고, 경영권 상속 과정에서 무리한 부분도 있고, 국내에 반기업 정서도 존재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해외자본도 잘 알고 있다.
김병준: 결국 이런 일이 삼성에도 교훈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까 걱정이다. 승리로만 받아들이면 앞으로 문제가 클 것 같다.
백용호: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스스로 가진 문제들, 특히 반기업 정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 일부에서 오히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이런 제도는 오히려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강화시켜 지금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김병준: 동감이다. 기업에도 오히려 독이 든 사탕이 될 것이다.
백용호: 지금은 스스로의 허점에 대해 자성을 할 때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특권 부여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선후가 바뀐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김병준: 우리 기업의 어떤 점이 우려되나?
백용호: 순환출자 문제, 그에 따른 지배구조 문제 등 많지만 2세, 3세 경영에 대한 걱정도 크다.
김병준: 어떤 문제인가?
백용호: 2세, 3세들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는데, 이들이 과연 윗대가 가지고 있던 창업 정신과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어쩌고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정신의 문제이다.
김병준: 많은 사람들이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백용호: 이른바 부덴브로크(Buddenbrooks) 현상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아버지는 어렵게 창업했는데 자식들은 예술과 종교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업가 정신이 무너진다는 내용인데, 이게 한국 기업에도 문제라 생각된다.
김병준: 2세, 3세로 갈수록 쉬운 길로만 가려 하는 것 같다. 소위 '갑질'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골목시장 상권이나 위협하는 일을 예사롭게 한다. '일감 몰아주기'는 이명박정부 때 확 늘어났다. 정부가 방임했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백용호: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수치상 늘어났다. 인정한다. 그러나 방임한 것은 아니다.
김병준: 그 앞의 참여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현대자동차가 회장 부자가 주인인 물류회사 글로비스에 일을 몰아주는 것을 그냥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걸 그냥 넘겼다. 문제 제기는 있었는데, 어쨌든 결과는 그리되었다. 이게 일종의, 그렇게 해도 된다는 사인이 된 것 같다.
백용호: 이제 이러면 안 된다. 법이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
김병준: 끝으로 지금 청와대의 정책 기능을 어떻게 보시나?
백용호: 직전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뭔가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 다만 이것 하나는 이야기하자. 경제는 심리다. 기업들은 뭔가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불안의 원인들을 잘 분석해서 중장기적으로 이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너무 현안에 매몰되어 있다.
김병준: 큰 틀에서의 기획 기능이 부족하다는 말로 들린다. 오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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