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정치의 품질

1955년 울산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1977년)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1955년 울산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1977년)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성숙한 민주정치는 정책으로 승부해야

票가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정치인

신념·철학은 뒷전인 채 입신 위해 굴신

우리가 뽑은 대표들의 미래 결정 비극적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한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은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를 비꼴 때 가장 많이 원용되는 말이다. 독재든 타락한 민주정이든 후진적 민주정치가 작동하는 것은 불순하거나 무능한 정치인 탓이 크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민도(民度)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정치란 것이 우리처럼 왕성한 나라가 없다. 신문 1면 헤드라인은 대개 정치 기사 차지다. 좋게 보면 대한민국은 대단히 역동적이지만 나쁘게 보면 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나라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 걸맞게 고품질의 정치를 향유하는가? 우리 정치도 이젠 이력이 제법 쌓였다. 광복 후 왕정을 복구하지 않고 이 나라는 민주공화정으로 건국됐다. 여성참정권이 주어진 때가 민주주의가 태동한 영국이 1928년, 프랑스가 1946년, 심지어 스위스가 1971년인 것을 볼 때 1948년 5'10 총선거는 경탄할 사건이다. 그로부터 67년이 지났다. 6'25전쟁도 겪었고 4'19, 5'16 같은 정치적 굴곡도 거쳤다. 민주주의를 위해 충분히 피도 흘렸다. 그렇다면 이른바 87체제가 출범한 지도 27년이 된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우리 정치인들은 고품질의 정치를 서비스하고 있는가? 아마 대다수 독자들은 나처럼 고개를 저을 것이다.

나쁜 정치는 국민을 고통스럽게 한다. 공자(孔子)가 제나라 태산 밑을 지날 때 한 여인이 목 놓아 울고 있는 걸 보았다. 공자는 수레를 멈추고 제자 자공(子貢)을 보내 연유를 물었다. 그 여인이 답하기를 시아버지가 범에 물려 죽은 뒤 남편이 범에 물려 죽었으며 다시 아들이 범에 물려 죽어 운다고 하였다. 자공이, 그렇다면 어찌 이런 기막힌 일을 당하고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는지 다시 물었다. 여인은 다름 아니라 이 고을에는 까다로운 정치가 없기에 머물러 살고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자공에게 일렀다. "소자야, 기록해 두어라. 까다로운 정치는 범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사악한 정치가 범보다 무섭다면, 부패한 정치는 온 나라를 썩게 하고, 무능한 정치는 온 백성을 병들게 한다. 그런 저급한 정치의 품질은 저급한 정치인들의 품질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수많은 어젠다를 이해할 아무런 지식도 없이, 정직하지도 않고 정의감도 없는 자가 공익보다는 사익(私益)에 눈멀어 하는 정치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표(票)가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정치인들이 의회에 앉아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비극적이다.

성숙한 민주정치는 이념에 충실한 정치인이 만들어낸다. 당연히 정략보다는 정책으로 승부한다. 이미지 정치나 하면서 다음 선거를 궁리하지 않고 끝없이 고뇌하면서 다음 세대를 염려한다. 이런 정치인이 우리 의사당에는 왜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 명색이 보수층을 대변한다는 정당의 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이란 걸 발의하고 그 의원은 원내대표가 되어 사회민주주의에 충실한 대표연설을 했다. 그런데도 그 정당의 어느 의원도 이를 탄핵하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가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면서 서구에서도 독일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소득대체율 50%에 합의했을 때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것만은 안 된다며 막지도 않았다. 이러고도 이 정당은 '보수를 혁신하겠다'고 떡하니 써 붙이고 있다. 새누리당 이야기다.

오히려 그 의원은 청와대와 각을 세운 바람에 인기가 치솟았다. 이러니 토크빌의 격언이 아직도 통용되는 것이다. 하긴 정치적 이념과 하등 상관없이 보스를 따라 이합집산하는 패거리 정치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 있다. 신념과 철학은 뒷전인 채 제 입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굴신하는 것이니, 또 언제든 배신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이러니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표들이 대표로서 행동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다.

전원책/변호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