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에 위치한 도동서원은 소학동자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입니다. 선생은 황해도 서흥이 본관이지요. 해마다 서흥 김씨 대종회에서는 방학을 맞아 후손들을 위한 뿌리 찾기 캠프를 이곳 서원에서 2박 3일 동안 개최합니다. 저도 매년 이 캠프에 참여해 왔습니다. 유사 어르신이나 대종회 사무국장님께선 "이 기간 동안 만큼은 우남희 선생은 서흥 김씨 하는 거야"라며 농담을 하시곤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남의 뿌리 찾기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제 뿌리 찾기 행사에는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타지에 가서 대구 사람만 만나도 고향 지기를 만난 듯 반가운 게 인지상정인데, 외지다고 할 수 있는 도동서원에 근무하면서 같은 성씨를 만나면 집안사람을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날 같은 성씨 한 분이 오셨습니다. 파를 물으시기에 동생에게 들은 대로 '문희공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파가 없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문장을 제대로 구사하기도 전에 이승의 강을 건너가셨습니다. 내가 이러할진대 동생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한 동생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의문 나는 것을 물으면 오라버니처럼 시원스럽게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동생도 잘못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거지요. 다른 곳에서 만난 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확실히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체성도 모른 채 반백 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성씨를 말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씨 대종회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방방을 뒤적거렸는데도 가려운 등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게시판에 뿌리를 찾고 싶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문답을 통해 거의 일주일 만에 제 뿌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호가 문희공인 역동 탁(倬) 할아버지의 차남 원명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봉상정공파라는 것을요.
어릴 때의 아름다움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하겠지만 나이 들어서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가꾼 내면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듯, 어렸을 때 몰랐다면 부모님 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천명의 나이가 되어서도 모른다는 것은 바로 제 탓임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당당하게 제 뿌리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종회에서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오고 휴대전화를 통해 안부를 물으시기도 합니다. 서원을 방문하신 그분들이 제 뿌리를 물었기 때문에 저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서흥 김씨 뿌리 찾기 캠프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정체성을 찾았으니 다른 어떤 해보다 타성의 뿌리 찾기 캠프에 참여하는 마음도 예전과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남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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