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족과 단절 16%…경로당·종교와 담쌓은 이들 37%

복지 사각지대 홀몸노인

법원의 최종 판결을 통한 실체적 진실을 기다려봐야 하지만 상주 살충제 사이다 사건은 가족과 떨어진 채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폭증세를 보이고 있는 홀몸노인들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을 통한 실체적 진실을 기다려봐야 하지만 상주 살충제 사이다 사건은 가족과 떨어진 채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폭증세를 보이고 있는 홀몸노인들에 대한 '복지 수요 파악'이 필요하며 일자리 등 그들이 자존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대책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살충제 사이다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진 상주 금계1리 마을 모습. 상주 고도현 기자

홀로 사는 노인들은 사회적 관계조차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전국의 홀몸노인 74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홀몸노인 중 16%는 가족과 만나지 않거나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고작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경로당이나 복지관 종교시설 등 사회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비율도 37%나 됐다.

고립된 생활은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하루에 2끼도 먹지 않는 노인이 25%나 됐고, 홀몸노인 중 대부분이 질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홀몸노인들이 많은 농촌은 마을 공동체가 서서히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고립된 노인들은 고독과 가난, 질병 속에 신음하다 세상을 떠나고, 외로운 노인들이 모여드는 마을회관과 경로당에서조차 따돌림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동체의 붕괴는 홀몸노인 증가를 가속화시키고, 손길이 미치지 않는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는 해마다 넓어지는 악순환을 빚고 있다.

◆가난과 외로움으로 이중고 겪어

홀몸노인들을 괴롭히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빈곤이다. 영천에 사는 A(81) 씨는 팔순의 나이에도 인근 과수원을 다니며 품삯 일을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될 만큼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데다, 그나마 받는 기초생활수급비의 절반을 자녀의 빚을 갚는 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K씨는 평소에는 날품을 팔고, 먹을거리는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지원하는 쌀이나 반찬, 생활용품으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홀몸노인 B(77) 씨를 괴롭히는 건 아들의 알코올중독이다. 수년째 술에 찌들어 살아가는 아들은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지만, B씨가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거의 없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아들이 부양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받았기 때문이다. B씨는 노인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번 돈 20만원과 기초연금을 보태 아들의 병원비로 내고 있다.

일상적인 빈곤에 시달리다 보니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연금도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홀몸노인생활관리사 C(48) 씨는 "재산이 많은데도 자녀들에게 미리 상속을 하고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 노인이 있으면 주변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갈등을 빚기도 한다"고 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홀몸노인들은 생활 속 안전사고 위험에도 쉽게 노출된다. 홀몸노인생활관리사 D(49) 씨는 "냉동식품 택배 상자 속에 든 아이스팩을 곰국이라고 끓여 드시는 어르신을 본 적도 있다"면서 "방습제로 사용되는 실리카겔을 먹거나, 심지어 수은전지를 약으로 착각해 드시는 분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함께 모여 있어도 갈등 잦아

홀로 사는 노인들이 낮시간에 함께 머무는 공동주거제도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농촌 노인들은 대개 이른 오전에 밭일을 마치고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을 찾는다.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30여 명까지 모인다. 이들은 쌀이나 라면 등 각종 먹을거리와 전기요금이 지원되는 경로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평생교육사업이 이뤄지는 마을에서는 노래교실 또는 요가를 배우거나 치매 예방을 위한 다양한 수업을 듣기도 한다.

문제는 오랫동안 함께 부대끼며 살았고, 나이나 촌수에 따라 서열관계가 정해지는 전통마을의 특성상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많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노인들이 식사 마련이나 청소 당번 등 사소한 일거리를 맡다 보니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취향과 성격이 다른 이들이 매일 모여 있다 보니 다투거나 따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앙금이 남아도 묻어둔 상태로 지내다가 극단적인 형태로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예천군 용문면의 한 노인회관에서 주민 E(65'여) 씨가 노인 F(80'여) 씨를 넘어뜨려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단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던 중 밥솥에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는 게 다툼 이유였다. 피해 노인이 따라다니며 질책하자 화를 참지 못했다는 것. 경찰에 입건된 E씨는 합의를 시도했지만 F씨 가족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타는 공동 공간에서 냉장고에 음식을 장기 보관하는 등 위생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청도군 주민생활지원과 한 관계자는 "앞으로 홀몸노인들을 돌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공동주거제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홀몸노인생활관리사 등이 동네마다 다니면서 자녀 문제나 경제적 문제, 남은 인생 설계 등 상담과 말벗이 되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관계 회복과 외로움 달래기 절실

보건복지부는 올해 45만 명을 대상으로 노인돌봄서비스를 시작했다. 생활관리사가 홀몸노인의 집을 주 1회 이상 방문해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서비스다. 경상북도는 올해 127억7천만원을 들여 생활관리사 904명을 홀몸노인 가정에 파견했다.

또 홀로 사는 노인들이 각종 사고나 건강 악화 등으로 응급상황을 겪을 때를 대비해 응급안전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가스누출'화재감지'활동감지센서나 응급호출기를 가정에 부착, 대처하는 방식으로 현재 경북도 내에서만 4천563명이 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또 사회관계 회복을 위해 그룹별 심리치료 및 건강'여가 프로그램, 자원봉사 등을 통해 친구를 만들어주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경북도는 지난해 친구 만들기 시범사업으로 포항과 김천, 경산, 문경 등에서 은둔형 홀몸노인과 자살 고위험군, 관계위축집단 등 3천534명에게 사례 관리 서비스와 우울증 집단치료, 자원봉사활동 참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37곳의 공동거주 집을 운영하고 건강음료와 반찬 배달 서비스도 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늘어나는 홀몸노인들을 돌보기엔 인력과 재정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경산시재가노인센터 황명구 시설장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의 봉사단체에서 제공하는 노인 대상 사업은 굉장히 다양하다"면서도 "각 서비스가 일률적이거나 중복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는 노인들이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기반 마련이 꼭 필요하다.

정재현 경북시니어클럽협회장은 "노인들이 다른 취약 노인들을 도울 수 있도록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익창 성주군 주민복지과장은 "각종 질환과 외로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담 인력과 재정을 마련, 근본적이 치유가 가능하도록 서비스의 질을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영천 민병곤 기자 청도 노진규 기자 경산 김진만 기자 영덕 김대호 기자 장성현 기자 안동 권오석 기자 청송 전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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