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마음의 소리

안 건 우
안 건 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서점에서 책을 세 권 사왔습니다. '이야기한국사세계사'와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마음의 소리'라는 책이었습니다. 그중 한 권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의 소리, 책 제목에서 풍기는 교양서적 같은 느낌과는 달리, 만화책이었습니다. 아들은 요즘 인기 많은 웹툰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리도 인기가 있을까 궁금했고, 고상해 보이는 제목과는 거리가 먼 그림체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첫 장부터 읽기 시작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저는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낄낄거리며 얼마나 유쾌하게 읽었는지 모릅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사건들을 엉뚱한 시선과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유쾌함과 섬세함이 너무 부러웠고,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소한 일상을 새롭게 구성해 결국은 즐거운 감동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의 재주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목표라면, 그 작가는 나름 성공한 셈입니다.

이 작가의 재주가 인상적이고 부러웠던 이유는 저 역시 관객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였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일에 관심과 애정을 더욱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자세가 곧 좋은 노래를, 좋은 그림을, 좋은 시를, 좋은 희곡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주변에서도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처음 머리를 가눌 수 있게 된 날, 아이와 처음 눈을 맞춘 날,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날, 아이가 계단을 혼자 걸어 올라간 날, 아이가 젓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된 날, 아이가 김치를 처음 먹고 울던 날,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탄 날, 아이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이며 기적에 가까운 이야기의 연속이었지만, 저는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감동은 사람마다 느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정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매일 오가는 길가에 피고 지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에 사랑스러운 눈길을, 또 그 길에서 뵙는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눈인사를,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며, 기적을 나누어 주는 모든 것에 고마워해야겠습니다.

기적이란,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듯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뿐입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일상을 아끼고 또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기적의 중심에 살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곧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안건우/극단 시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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