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왕자의 난' 롯데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 퇴진

장남-차남 후계 분쟁 표면화…차남 신동빈 회장에 역풍 맞아

롯데그룹에서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신격호(94) 롯데그룹 창업자이자 총괄회장 이후 후계 구도를 놓고 장남 신동주(61)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60) 한국 롯데그룹 회장간의 분쟁이 표면화한 것이다. 2000년 3월 현대그룹에서 일어난 '왕자의 난'에 이어 15년 만이다.

일단 27, 28일 일본에서 시도된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현재로선 신 회장의 지배체제가 공고해 보이지만 신 총괄회장의 뚜렷한 '의중'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데다, 신 전 부회장의 보유 지분도 엇비슷해 경영권 분쟁이 재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롯데의 후계구도와 경영권에 아직 불안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약한 고리인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이번 사태의 촉매가 됐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의 '허'를 찔렀다. 그가 신 총괄회장을 데리고 비밀리에 일본으로 건너갈지는, 신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진을 해임할지는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28일 롯데그룹 관계자 등에 따르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간 것은 27일. 신 전 부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도 동행했다.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은 롯데그룹도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이뤄졌다.

휠체어에 탄 채로 일본롯데홀딩스 사무실에 등장한 신 총괄회장은 신 전 부회장과 신 이사장의 도움을 받아 손으로 자신을 제외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진 6명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고 일본롯데홀딩스 직원에게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해임을 지시한 이사진 6명에는 지난 16일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차남 신동빈 회장도 포함돼 있었다. 원래 이사회에 해임안을 상정한 뒤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임을 지시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자신이 해임한 쓰쿠다 다카유키 이사에게 "잘 부탁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고령인 신 총괄회장이 상황 판단이 흐려진 것 아니냐는 시각까지 제기되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연로한 아버지를 앞세워 동생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를 모두 장악하는 것을 저지하려 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실제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6일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인 일본롯데홀딩스가 이사회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이후 강한 반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일본 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해임된 데 이어 올해 1월 8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도 해임되면서 사실상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에 대해 신동빈 회장은 곧바로 재반격에 나섰다. 일본에 머물고 있던 신동빈 회장은 28일 오전 현지에서 일본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신 회장 등 이사진 6명은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전격 해임하고, 전날 이사진 6명 해임은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밝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직접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일본롯데홀딩스를 되찾으려고 한 것인데 결국 실패하게 됐다"고 전했다.

일단 이번에 신 총괄회장이 전격 해임되면서 지배 구조 측면에서는 신동빈 '원톱 체제'가 오히려 더 굳어졌다. 문제는 주식 지분에서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을 이어주는 회사가 일본 비상장법인인 광윤사(光潤社)다.

광윤사는 일본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갖고 있고, 롯데홀딩스는 한국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호텔의 지분 19%를 갖고 있다. 광윤사 지분만 보면,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29%씩 갖고 있지만 12%를 보유한 '우리 사주'가 신 회장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경우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20% 안팎으로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의 지분율은 28% 정도로 두 아들보다 높다. 두 형제는 롯데홀딩스를 통해 호텔롯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 지분은 전혀 없다.

한국 롯데의 다른 주요 계열사에서도 두 형제의 지분 격차는 크지 않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과 첫째 부인 사이의 딸, 신영자 이사장(롯데쇼핑'롯데칠성'롯데푸드'롯데제과 등 1∼2% 지분), 셋째 부인 슬하의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롯데쇼핑'롯데삼강'코리아세븐 등 1% 안팎 지분) 등도 일정 지분을 갖고 있다. 만약 신 전 부회장이 이들과 손잡고 신 회장에 맞서 지분 경쟁에 나설 경우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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