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론새평]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1963년 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 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집권여당 대표 큰절, 비굴한 외교 단면

아무리 정치적 계산이라도 '과공비례'

한국 보수층 '한미동맹' 세레모니 인식

지도자는 아무데서나 넙죽 엎드리지 않아

'장군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기사의 제목만 보고는 북한주민들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한테 단체로 큰절을 올렸다는 얘기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방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알링턴 국립묘지 워커 장군의 묘소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는 소식이다. 그 일이 있기 전날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들과의 리셉션'에서도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카펫이 깔린 바닥에 단체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대표단의 모습이 가관이다. 세계 외교사에 다시 보기 힘든 해괴한 장면이다.

그 사진은 나를 이상한 상상으로 데려간다. 조선의 대신들이 명나라 이여송 장군 앞에서 일본을 물리쳐 줘서 고맙다고 단체로 무릎 꿇고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사대(事大) 근성'은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명나라가 미국으로, 일본이 북한으로 바뀌었을 뿐, 큰 나라에 목숨 걸고 충성하는 빌어먹을 문화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임진왜란 때야 일본의 압도적 군사력 앞에서 힘이 없어서 그랬다 치자. 지금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북한을 압도하는데,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

비슷한 일이 이미 있었다.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당하여 입원했을 때, 일군의 기독교인들이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 기원 및 국가 안위를 위한 경배찬양 행사'를 열었다.

미국대사를 위해 대낮에 대로에서 발레와 부채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민망했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이에 대해 과도한 퍼포먼스와 위로 공연이 외려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에 이미 '과공비례'(過恭非禮)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근데 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집권여당 대표의 과공이 한국인들에게는 굴욕으로 보이리라는 것을 김 대표가 몰랐을 리 없다. 인사할 때 고개조차 숙이지 않는 서구인들에게 엎드려 올리는 절을 받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울지도 그가 몰랐을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큰절을,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올린 것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그것은 태평양 건너편에 두고 온 한국의 보수층을 끌어안으려는 정치적 제스처라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길바닥에서 부채춤을 추며 실성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꽤 있다.

한국의 '보수층'은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두려움 때문일 게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북한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도와주지만, 한국은 미국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수틀리면 떠나겠다는 얘기다. 한국 보수층의 비굴함은 이 매질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미군은 동아시아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왔고,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매년 1조원의 방위비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보수의 사디즘을 한국의 보수는 마조히즘으로 받는다. 여당 대표의 큰절은 그 두 가지 성욕을 하나로 연결하여 이른바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 사도마조의 관행으로 완결하는 세레모니다.

'설사 트럼프 같은 강경 매파가 집권한다 하더라도, 미국에 입은 은혜를 큰절로 보답할 줄 아는 이가 지도자라면, 한반도는 안심해도 될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보수층에 이런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자신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김 대표는 "북핵을 해결하려면 전략적 인내를 넘어서는 창의적 대안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그 대안이 뭘까? 당연히 없다. 유일한 대안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동북아 균형자론'인데, 이명박-박근혜정부가 그동안 열심히 폐기해 온 게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략적 인내'를 포기하도록 미국을 설득할 의지를 가진 지도자라면, 아무 데서나 넙죽넙죽 엎드리지는 않을 게다. 아무리 미국이 중요해도 나라를 대표해 갔다면 지켜야 할 격조와 품위가 있는 법이다.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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