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환갑잔치가 없어진 것일까
그 흔한 정년 기념식·집들이도 사라져
인생의 전기 기념·공동체 조성한 잔치
사회가 변해도 전통만은 이어졌으면…
"당신이 원하는 날짜만 말하세요. 그럼 제가 하루 종일 당신과 함께 지내겠습니다." 내가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들어본 선물 중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다. 얼마 전 60세 생일을 맞이한 독일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독일 사람들도 60세 생일에는 커다란 잔치를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환갑잔치인 셈인데, 크다고 해봐야 조그만 식당을 빌려서 가깝게 지내는 친지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정도이다.
잔치를 베푸는 주인은 대체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메뉴를 짜고 포도주를 선택하는 데 온 정성을 쏟는다. 잔치란 모름지기 먹을 것이 좋아야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것 같다. 환갑을 맞이할 때까지 살아오면서 함께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니 그룹도 다양하다. 어릴 적 친구부터 시작하여 직장 동료,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지만 스스럼없이 즐긴다고 한다. 잔치를 계기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친구의 이 말에 솔깃했던 것은 나도 올해 환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그동안 정을 나눈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누면서 함께 즐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독일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초청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박한 선물들을 들고 온다고 한다. 감동을 받은 책 한 권, 부부가 함께 저녁을 보내라는 뜻의 연주회 티켓, 여행을 하면서 당신 생각이 나서 샀다고 건네는 조그만 소품, 그리고 원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는 재치 있는 예쁜 카드. 이런 정도의 선물이라면 초청받는 사람들에게도 별 부담이 되지 않을 터이니 정말 즐거운 모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일장춘몽이었다. 우리에겐 어느새 잔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잔치 얘기를 했더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한다. 요즘 때가 어느 땐데 환갑잔치 타령이냐고 아우성이다. 손님들 청해서 밥 한 끼 먹으면서 즐겁게 보내자는 것이 뭐 그리 잘못이냐고 그랬더니, 그것조차도 초청받는 사람들에겐 부담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예전엔 환갑이면 오래 산 것이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으니 굳이 기념할 필요도 없다는 말도 들려줬다.
잔치를 포기하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조촐하게 밥을 먹으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환갑잔치가 없어진 것일까? 물론 사라진 것은 환갑잔치만이 아니다. 정년을 맞이해도 그 흔한 기념식도 없이 학교를 떠난다. 그렇게 흔하던 집들이도 사라졌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 이웃과 친지를 불러 집을 구경시키고 음식을 대접하던 전통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집들이를 하더라도 식사는 밖에서 하고 집에선 간단한 다과 정도만 대접한다. 마치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잔치란 본래 기쁜 일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환갑잔치의 실종은 두 가지 점에서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선, 잔치는 삶의 전환점을 기념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잔치와 축제라는 낱말은 라틴어 '페스툼'(festum)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특정한 절기를 기념하는 종교적 의식을 의미한다. 육십갑자의 갑으로 돌아온다는 뜻의 환갑만큼 커다란 전환기가 어디 있겠는가? 환갑잔치의 실종은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인생의 커다란 전기를 놓쳐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음으로, 잔치는 사회학적으로 공동체를 조성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의식은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대중문화 매체에서는 각종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정작 우리의 삶 속에서는 집에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밖에 음식점은 많은데 먹을 게 없는 것처럼, 먹을 기회는 많지만 함께 즐거워할 자리는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유감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우리에게선 사라진 환갑잔치가 서양에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사회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함께 변화할 수 있는 전통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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