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조희팔과 사회정의

50대인 A씨를 처음 만난 것은 법조 담당 기자로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3월 중순이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탓에 검붉은 얼굴에다 가느다란 음성은 유약하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뭔가를 갈구하는 듯한 강한 눈빛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석에서 만난 A씨는 조희팔 금융사기 사건에 휘말려 전 재산을 날리고 가정 파탄까지 겪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대구 태생이지만 조 씨에게 사기를 당한 후 경기도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지금도 한 달에 서너 차례 손수 운전대를 잡고 대구를 찾는다. 이유는 한 가지다. 조 씨 사기 관련자의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그는 법정에서 피의자들의 진술뿐만 아니라 변호인, 재판관의 발언까지 꼼꼼히 메모한다. 재판 당사자들의 발언이 어떻게 바뀌는지, 발언의 배경이 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란다. 지난해 법원에 공탁된 조 씨 범죄 수익금 320억원을 두고 벌이는 민사소송도 주도하고 있다. 그만큼 조 씨에게 사기당한 재산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동시에 조 씨 사기 가담자 또는 조력자들에 대한 강한 처벌도 주장한다.

사건 발생 7년이 지난 현재 A씨와 같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다. 피해액을 보상받은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조 씨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이후 피해자들은 '전국 조희팔 피해자 채권단'을 만들어 숨긴 재산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채권단 핵심 관계자들은 힘없고 빽없는 피해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숨긴 재산 중 일부를 빼돌려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다. 도덕적 해이 정도가 조 씨 뺨칠 정도다. 또 조 씨가 사기를 통해 모은 700억원이 넘는 범죄 수익금은 최근까지 고철무역업자 주머니에 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조 씨에게 고철무역업자를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검찰 수사관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줘야 할 검찰 수사관이 단군 이래 최대 사기꾼으로 불리는 조 씨 비호 세력이었다는 사실에 기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앞서 조 씨에게 뇌물을 받은 고위 검사와 경찰관 등이 구속됐지만 검찰 수사관에 비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 구속된 검찰 수사관은 조 씨가 1천억원대의 범죄 수익금을 숨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해당 검찰 수사관이 뇌물로 받은 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을 5대 범죄로 일컫는다. 하지만 조 씨 사건을 지켜보면 사기가 5대 범죄보다 더 악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조 씨 사건처럼 피해액이 2조5천억원에 이르고 피해자만 2만4천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건은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이 파탄 난 사례도 여러 건이다. 결혼 자금을 모두 투자한 20대 피해 여성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더욱이 사기범은 5대 범죄 흉악범과 달리 사기로 얻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일부 피해자들은 조 씨가 현재도 중국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다고 확신한다.

기자는 조 씨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정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조 씨가 벌인 놀랄 만한 사기극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조 씨의 범행 과정을 쫓다보면 검'경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 자금과 조직을 담당했던 조 씨 측근들을 찾아내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들은 조 씨 밀항 전후로 중국으로 도주했다.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 수사관과 같은 조 씨 비호세력이 여전히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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