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 든 검은 구름-소식
먹물 든 검은 구름 산을 채 넘기도 전
소낙비 구슬 뛰듯 뱃전을 난타하네
난데없는 돌개바람 모조리 다 흩트리니
망호루 아래 물빛 푸른 하늘 빛 이로고
黑雲飜墨未遮山(흑운번묵미차산)
白雨跳珠亂入船(백우도주난입선)
卷地風來忽吹散(권지풍래홀취산)
望湖樓下水如天(망호루하수여천)
*원제: [六月二十七日 望湖樓醉書]-6월 27일 망호루에서 술에 취해 쓰다. *望湖樓(망호루): 항주의 아름다운 호수 서호(西湖) 가에 있는 누각. *白雨(백우): 소나기. *卷地風(권지풍): 돌개바람.
1072년 음력으로 6월 27일, 항주(杭州)의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경탄을 했던 유서 깊은 도시, 바로 그 항주다. 이 아름다운 도시로 좌천되어 와 있었던 동파(東坡) 소식(蘇軾'1036~1101)은 그날 항주의 꽃인 서호(西湖)에서 유유히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가 '진한 화장을 한 서시(西施)도 좋고 연한 화장을 한 서시도 좋듯이, 맑으면 맑아서 좋고 흐리면 흐려서 좋다'고 노래를 했던 서호였다. 동파는 서시를 닮았다는 서호의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풍류와 낭만이 도저했던 그는 술도 어지간히 마셨던 모양이다.
그때다. 산 너머에서 난데없이 먹물 든 구름 떼들이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우글우글 와아~ 밀려오고 있었다. 먹구름이 아직 산을 채 덮지도 않았는데, 홀연 소낙비가 다다다다 다다다다 하얀 구슬처럼 뛰어오르며 뱃전을 마구 난타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돌발적 사태였다. 갑자기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린 동파는 망호루 위로 후닥닥 뛰어올라 소낙비를 피했다. 아니다, 실은 호수 위에다 힘차게 대못을 치고 있는 저 시원하고도 장쾌한 소낙비를 입을 딱 벌린 채로 바라보고 있었을 게다. 그런데 돌연 온 천지를 뒤덮는 한바탕 거센 돌개바람이 느닷없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기세에 먹구름은 죄다 날려가 버리고, 소낙비도 기가 죽어 그만 뚝 그쳤다. 그와 동시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호수의 물빛이 새파란 하늘빛을 띠고 있었으니, 이제 상황은 끝났다 오버.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듯, 번갯불에다 콩을 구워먹듯, 화닥닥 전개된 놀라운 속도의 기상이변을 단숨에 포착해낸 통쾌한 시다. 미불, 황산곡과 함께 송나라의 3대 서예가이기도 했던 시인이, 술에 취해서 주체할 수 없는 그 미친 흥취를, 기상이변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그 신들린 붓끝에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전달했을 터이니, 어이 시원타, 어이 시원타!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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