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피서와 하드

불과 10일여 전만 하더라도 온 나라가 메르스 여파로 휴가는커녕 어디를 간다는 자체가 공포였다. 사람은 참 유별스럽기도 하고 잘 잊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온통 메르스만을 이야기하던 여론도, 사람들도 잠잠하다. 피서철을 맞이하여 지난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 휴가의 절정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산으로, 들로, 해외로, 관광지로 떠났다. 요즘 연일 폭염으로 인하여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더위를 피해 휴가를 가는 사람들보다는, 아직은 우리 사회가 휴가나 피서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힘들게 휴가를 다녀온 분들도 피서 후의 만족도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다.

현대인들은 멀리 떠나는 피서를 선택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작은 일상에서 늘 하던 일을 사랑하며, 지혜로운 자기만의 피서법을 개발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참 독특한 피서법으로 여름을 난 선인들이 많았다. 조선 중기 퇴계의 제자였던 문신인 정경세(1563~1633)는 날씨가 더우면 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방안에 틀어박혀 조용한 가운데서 오는 서늘함을 느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송규렴(1630~1709)은 '상상의 피서'를 즐겼다고 한다. '맑은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정자 뒤편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온종일 정자 난간에 기대어 더위를 식힌다'고 상상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1824년 그가 쓴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서 8가지 자기만의 피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대자리 깔고 바둑두기' '달밤에 발 씻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등을 포함하여 8가지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즐기는 여유와 더위를 이기는 법을 말하고 있다. 물론 지금 실정에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더위에 허덕이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생활 속에서 피서하는 여유와 멋이 배어 있다.

최근에 연예인 홍서범 씨가 방송에서 밝힌 피서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견디기 어려운 더위가 있을 때 웃통을 벗고 가슴에 물을 살짝 바른 다음 부채를 살살 부치면 온몸이 한기를 느끼고 그것보다 더 시원한 것은 없다고 다소 황당한 피서법을 당당히 밝히고 있다. 필자의 경우 어릴 적 가장 기억에 남는 피서에 대한 기억은 얼음과자에 있다. 어릴 적 뜨거운 여름에는 동네마다 '얼음과자'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가게 앞에 일명 '하드'라고 불리는 얼음과자를 팔았다. 통 위의 고무 덮개를 열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드라이아이스와 포장되지 않은 '하드'가 들어 있었다. 정말 보기만 해도 즐겁고 시원했다는 추억이 있다.

여름에는 손자와 동네에 나가면 할아버지는 늘 하드를 사주신다는 생각에 다른 것은 싫어도 하드 먹는 재미에 할아버지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겨 동네 어귀 큰 길가의 구멍가게 방향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하드'라도 하나 사주는 날이면 온몸에 시원함을 느낌은 물론 세상에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쁨이 있었다. 피서를 가지 못한 많은 분들이여! 오늘 밤에는 나이를 초월하여 지금의 현장에서 피서 가지 못한 안타까움이나 서글픔이 아닌 잠시나마 옛추억의 '하드'를 먹으며 추억과 더위를 함께 먹으면 어떨까? 나만의 추억과 멋에 젖어보면 어떨까? 여름…더위…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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