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서지에서 생긴 일 낭만과 추억 속으로<1>

'로맨스 인 제주 아일랜드'(Romance In Jeju Island), 2년 전 운명처럼 여름 로맨스 커플이 된 이왕현'임지선 씨 커플이 제주도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

피서지는 역시 여름철 낭만의 공간이다. 가족, 친구, 연인 간의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이다. 떠나기 전부터 마음은 콩닥콩닥 설레며, 집에서 출발해 피서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들뜬 기분으로 간다. 피서지에 도착하면 더 좋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생겨서 내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 줄지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피서지가 굴욕, 창피, 망신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이 발생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는데….

이번 주 주말판은 여름 낭만과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바로 '피서지에서 생긴 일'. 2년 넘게 잘 사귀는 한 커플의 제주 로맨스 스토리를 통해 역시나 여름 피서지는 낭만의 공간임을 증명한다. 여름철 피서지를 추억하는 이들을 통해 썸(좋은 로맨스) & 쌈(나쁜 로맨스), 굴욕 사건 등 각종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더불어 세대별로 여름철 피서지에 대한 추억들을 되새겨봤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피서지에서 생긴 '썸'-이왕현·임지선 씨

2년 전 제주도, '왕지 커플' 탄생 달콤했던 로맨스

여름철 피서지는 역시나 또 한 커플을 맺어줬다. 이른바 '왕지 커플'. 이왕현(28'경찰공무원 준비생)'임지선(24'사회복지사). 두 사람은 2년 전 '8월의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썼다. 운명처럼 만났다고 믿고 있으며, 아직 좋은 연인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

이 씨는 군 부사관으로 최전방에서 6년간 복무하다 전역하고 대학생 여름방학 국토 대장정 프로그램에 스태프(Staff)로 참여하게 됐다. 이 국토 대장정은 경남 남해 4박 5일, 대구~전남 해남 땅끝마을 12박 13일, 서울~부산 17박 18일, 제주 올레길 9박 10일 코스였다. 여름 내내 태양과 싸우면서 걸어다닌 탓에 '흑형'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던 때였다. 국토 대장정이 마무리될 무렵, 그는 운명의 대구 출신 여자 친구(여친)를 만났다.

현재의 여친인 임 씨가 여름 피서로 화끈하게 국토 대장정 프로그램 '제주 올레길'에 참가하면서 운명의 '썸'(Some)이 시작됐다. 이 씨는 '썸'이 시작됐던 그때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주도에서의 첫날! 드디어 제주도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원들 100명이 숙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쭉쭉 빵빵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이 내 레이더에 포착됐다. 참가대원은 100명인데 내 마음속의 대원은 오로지 1명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바로 내 여자라는 것을~."

늑대(?)의 작전은 여우(?)를 향해 개시됐다. 이 씨는 며칠 동안 그녀 주변에서 자연스레 맴돌게 되었고, 조별 활동이 있을 때는 그녀가 속해 있는 2조를 자진해서 담당했다. 꼼수(?)와 괴력(?)도 발휘했다. 퀴즈 등 각종 게임마다 약간의 속임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2조를 우승으로 견인했다. 그는 "군 하사관 시절 독한 'FM 간부'(규정과 규칙의 사나이)로 통했는데, 사랑 앞에 그런 비리를 저지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결정적인 로맨스의 기회는 제주도 만장굴에서 찾아왔다. 만장굴에서 나오는 길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그녀를 데리고 나오게 되는 기회가 생긴 것. 짧은 인사말이 아닌 긴 대화를 나누게 된 역사적이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물론 기념사진도 같이 찍었다. 그 후, 어느덧 대원들을 통제하던 중에도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그의 듬직한 카리스마가 무너져 내리곤 했다.

둘의 인연을 끈끈한 연인으로 맺어준 결정타는 '마니또 프로그램'. 그녀의 번호가 '16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지막으로 제비뽑기를 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들어온 쪽지는 운명의 '16번'이었다. 이 씨는 '이건 바로 하늘의 계시! 이게 바로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이 씨의 마니또는 임 씨.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가 이 씨를 불렀고, 초코바와 음료를 건넸다. 때는 왔다. 그리고 외쳤다. "바보야! 내 마니또는 바로 너야!"

이 씨의 관찰력도 한몫했다. 그녀가 주변 사람에게서 태닝 오일을 빌려서 쓰는 것을 알게 됐고, 서귀포 시내까지 나가 태닝 오일을 사서 선물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니또니까. 한라산 1,950m 정상까지 등반도 함께 했다. "누가 그랬던가. 남녀가 산을 오르면 내려올 때는 함께 내려온다고…. 그날 밤은 우리 왕지커플의 탄생일, 2013년 8월 20일이다."

왕지커플에게는 여름철 피서지였던 국토 대장정 제주도 올레길 프로그램이 '썸'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2015년 8월 1일 현재에도 그 여름철 로맨스는 진행 중이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피서지에서 생긴 굴욕·황당

비키니 맵시에 튜브 여유 거대 파도에 백사장 내동댕이

피서지에서 생긴 잊지 못할 기억은 대부분 썸&쌈 그리고 굴욕'황당사건이 많았다. 남경순(57) 한국전통배내옷연구소장은 풋풋했던 대학시절 해운대 백사장에서 겪었던 튜브 전복사건을 떠올렸다. 대학교 1학년 때 여름 가족 피서이야기 중 일화다. 나름 여대생이라고 비키니로 맵시를 내고, 우아하게 튜브를 이용해 파도타기를 즐기던 중이었다. 백사장의 멋진 남자도 구경할 겸 등을 돌리고 튜브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밀려와 튜브와 함께 해운대 모래사장으로 그대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얼굴은 모래와 뒤범벅이 됐고, 주변 사람들의 웃음이 귓가를 때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지경이었다. 남 소장은 "돌이켜보면 지금은 아무 일이 아닌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여성은 어딜 가도 너무 우아한 척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회사원 이준섭(31) 씨는 올여름 7월의 세 여인을 잊지 못했다. 혼자 해운대에 놀러 갔다가 야심한 새벽 술집에서 3명의 여인과 자연스레 부킹이 이뤄졌다. 이 씨는 셋 중 한 명을 맘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별로라고 생각했던 두 여인이 만취해 자발적으로 귀가했다. 내 맘에 쏙 들었던 여성만 남은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뭔지 모를 주저함 때문에 그 여성도 조용히 집에 데려다 줬다. 이 씨는 "술 한잔 더 하자고 했어야 했는데, 지금도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통탄했다.

50대 자영업자 이인갑 씨는 30년 전 대학 동아리 시절 청도 운문사 계곡에 야영 갔을 때를 떠올렸다. 이 씨와 친구들은 먼저 도착한 후배 여대생 3명을 깜작 놀래켜주기 위해 동네 깡패로 위장, 텐트 안에 있는 여대생들에게 깜짝 공포를 선사했다. 여대생들은 진짜로 놀라서 한 번만 살려달라고 지갑, 핸드백 등을 다 내어놓으면서 "제발 폭행만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이 씨는 여름 휴가철만 돌아오면 이 기억을 떠올리며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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