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父 신격호 "롯데 키운 건 나, 차남 용서 못해"

"신동빈, 회장 권한·명분 없어" 장남 측 통해 '경고 영상' 공개

롯데그룹의 후계 다툼이 표면화한 지 2일로 일주일째를 맞고 있다.

롯데그룹 사태는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지만, 신 회장의 공세도 만만찮아 승패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예단하기 어렵다.

◆신 총괄회장, 장남 편들어 차남 압박

롯데그룹 후계 다툼은 애초 신동주'동빈 형제의 난에서 신격호'동빈 부자 갈등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신 총괄회장의 개입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2일 신 전 부회장 측을 통해 자신의 입장이 담긴 영상을 전격 공개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영상에서 "롯데그룹과 관련해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둘째 아들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과 롯데홀딩스 대표로 임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신동빈 회장에게는 어떠한 권한이나 명분도 없다. 70년간 롯데그룹을 키워온 아버지인 자신을 배제하려는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 전 부회장도 2일 국내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롯데홀딩스 최대 주주는 광윤사, 그다음이 우리사주로 두 개를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며 "주주총회에서 승리하면 나를 따르다 해임된 이사진을 복귀시키고 신격호 총괄회장을 다시 대표이사직으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

한편 2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주요 상장사인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롯데케미칼의 중국과 홍콩 법인들이 2011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총 1조1천513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신 회장 측은 "법리적으로는 우리가 유리하다"며 "최근 공개된 신 총괄회장의 지시서(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승인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 등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1조원 손실 주장에 대해서도 "신 총괄회장이 중국 사업 적자 현황을 알고 있다. 롯데그룹 전체의 2011~2014년 누적 영업적자는 EBITDA(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창출 능력) 기준으로 3천200억원"이라고 반박했다.

또 롯데그룹 한 관계자는 2일 "(신동빈 회장이) 3일 귀국한다"며 "당연히 공항에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안다. 상대방(신동주 전 롯데 부회장)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홀딩스 주총 이후 향배는?

롯데그룹 후계 다툼은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표 대결로 승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지난달 28일 신 회장 주도로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한 것과 관련해 정관 변경의 필요성이 있는 만큼 주주총회 개최는 불가피하다. 이 자리에서 롯데홀딩스 임원 교체 안건이 튀어나올 수 있고 그와 관련한 주총의 선택에 따라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가 바뀔 수 있다.

신 회장 측은 일단 명예회장 추대와 관련한 정관 개정에는 찬성하지만, 임원 교체 안건 처리를 위한 주총 개최는 불가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한'일 롯데의 핵심 지주사인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가 베일에 싸여 있어 임원 교체 안건 처리를 위한 주총이 열린다면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신 전 부회장은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임원 교체를 위한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개최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신 회장 주도의 이사회가 주총 개최를 승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주총을 두고 진통이 예상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총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지만, 주주들은 결국 신 총괄회장의 경영 판단에 주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 사태, 전근대적 재벌경영 민낯 드러내

롯데그룹 후계 다툼은 전근대적 재벌경영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장막에 싸인 기업 지배구조, 창업주의 독단적인 황제경영, 그룹 지배권을 둘러싼 부자'친형제'친족 간 진흙탕 싸움이 줄줄이 노출되고 있다. 연매출 83조원에 임직원 10만 명, 80여 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대기업 그룹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전근대적인 재벌경영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의 기업 지배구조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신 총괄회장 일가는 낮은 지분율에도 얽히고설킨 400여 개의 순환출자로 계열사를 거느리며 황제경영을 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신 총괄회장은 전체 그룹 주식의 0.05%만 갖고 있다. 신 회장 등 일가의 보유주식을 모두 합쳐도 지분율이 2.41%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 싸움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롯데그룹은 기업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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