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映畵)는 지난 세기 골목을 영화(榮華'이름이 세상에 귀하게 빛남)롭게, 그러니까 번화가로 만들었다. 사람들을 극장에 그러모아 꿈과 낭만을 보여줬고, 사람들은 그렇게 체험한 꿈과 낭만을 거리에 열정과 흥취로 풀어냈다. 지난 세기 극장은 번화가의 문화를 만든 랜드마크였다.
◆찬란했던 대구 극장 골목사, 향촌동에서 중앙로까지
대구 최초의 극장은 1907년 태평로에 일본인 나카무라가 세운 금좌(니시키좌)로 알려져 있다. 1920년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자본을 댄 조선관이 화전동에 개관했다. 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극장은 만경관이다. 1921년 함경도 출신 이재필이 중구 향촌동에 세웠다. 현재 위치한 종로로 옮겨 간 시기는 1930년대다.
만경관이 설립된 이후 향촌동을 중심으로 하는 원도심에 1세대 극장 골목이 형성됐다. 1920년대에 들어선 대구극장과 대송관(이후 대정관, 신흥관 등의 이름을 거쳐 송죽극장이 됨), 1930년대에 들어선 호락관(이후 나이트클럽 초원의 집)과 영락관(이후 자유극장) 등이다.
극장 로드가 대구의 새 번화가인 동성로와 중앙로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2세대 극장 골목의 시작이다. 앞서 1938년 동성로에 세워진 키네마구락부는 한국전쟁 때 무너진 서울 국립중앙극장 대신 3년간 국립중앙극장으로 쓰이다가 1957년 개인에게 인수돼 한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950년대는 북성로와 향촌동이 여전히 번화가로 명성을 날리던 때였다. 그런데 동성로에 한일극장이 개관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관객이 한일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약속 장소로 한일극장을 찾았다. 그러면서 한일극장 주변 유동인구가 늘어났고, 이것이 동성로 상권 확장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이어 1958년 제일극장이 동성로에, 1961년 아카데미극장이 중앙로에, 1997년 대구 최초의 복합상영관 중앙시네마가 중앙로에 들어섰다. 모두 대구 사람이라면 못 들어본 사람이 없는 대구산 고유명사들이다.
◆2000년대 들어 대구산 극장 잇따라 추억 속으로
그 많던 대구산 극장들은 지금 어찌 됐을까. 명맥을 꽤 온전히 이어나가고 있는 곳은 종로에 있는 만경관이다. 2002년 서울의 업체와 제휴해 MMC만경관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최근 리모델링을 거치는 등 경쟁력을 보완하며 영화관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일극장과 아카데미극장은 2000년대 초 각각 시네시티한일과 아카데미시네마로 이름을 바꾸고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로 시설을 업그레이드하는 등의 자구책을 강구했지만, 결국 대형 멀티플렉스 자본에 인수됐다.
그 외에는 좀 참담하다. 2002년이 정점이었다. 이해에 대구극장, 송죽극장, 자유극장, 제일극장이 관객 수가 급격히 줄자 잇따라 문을 닫았다. 대구극장 자리는 건물이 헐리고 주차장이 됐다. 제일극장 자리 지하에는 연극과 뮤지컬 공연을 올리는 문화예술전용극장CT가 2006년에 들어서 또 다른 명맥을 잇고 있다. 2004년에는 바로 옆 동네인 향촌동과 함께 1세대 극장 골목을 형성했던 포정동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씨네아시아(구 아세아극장)가 폐관했다. 2007년에는 중앙로의 중앙시네마가 문을 닫았다.
◆'영화 도시 대구' 명성 지켜나가는 극장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대구산 영화관이 몇 곳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의 득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력을 쌓고 있는 영화관들이다.
한 곳은 대구 유일 예술영화관 '동성아트홀'이다. 만경관 간판 화가였던 배사흠 씨가 1992년 문을 연 이곳은 2004년부터 예술영화관으로 운영됐고, 이후 10여 년간 2천 편 이상의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대구 영화 마니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곳은 극심한 운영난으로 지난 2월 잠시 폐관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장 관객들이 회생 운동에 나섰고, 결국 대구의 광개토병원 김주성 원장이 인수했다. 현재 김 원장이 대표를, 배사흠 씨는 명예대표를 맡고 있다. 이처럼 대구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과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동성아트홀은 현재 잠시 휴관하고 노후된 시설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또 한 곳은 1세대 극장 골목이 있던 원도심에 새로 문을 연 영화관이다. 역시 1세대 극장 골목을 드나들던 노년 관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포정동에 있는 '그레이스 실버 영화관'이다. 지난해 8월 23일 개관한 이 영화관은 개관 1년째를 앞두고 순항 중이다. 올해 6월에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취약계층 10여 명을 직원으로 고용하며 '작지만 야무진' 일자리 창출도 하고 있다. 138개 객석을 보유한 영화관에서는 매주 2편의 고전영화를 하루 4차례 상영한다. 만 55세 이상 관객에게 2천원의 관람료를 받는다.
관객은 물론 영화업 종사자까지 포함하는 대구 영화 마니아들에게 올해는 뜻깊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동성아트홀이 정상 운영 궤도에 오른 것과 함께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지난 2월 개관해서다. 오오극장은 모두 55개 객석을 갖춰 이름이 만들어진 영화관이다. 특히 대구에서는 매년 전국에서 수백 편의 독립영화를 출품받는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그 명성에 걸맞은 전용관을 갖춘 것이기도 하다. 마침 올해 제16회 대구단편영화제는 처음으로 오오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달 11~16일 열린다.
만경관부터 오오극장까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영화관들의 위치를 지도 위에 이으면 하나의 선이 그려진다. 이전만큼은 화려하지 않지만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대구 영화관 골목이다.
◆전국 2위 연극 도시 저력 품은 골목, 대명공연문화거리
사실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준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끊임없이 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것은 '연극'이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서울 다음으로 연극을 활발하게 제작하고 또 공연하는 도시로 평가받는다. 공연 유료 관객 수는 서울 다음으로 대구가 전국 2위를 늘 기록하고 있고, 대구권 20여 개 대학 40여 개 공연 관련 학과에서 공연 관련 인력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그 역량이 모이는 중심지는 대구 남구 대명공연문화거리다.
대명공연문화거리는 2009년에 붙은 이름이지만 그 역사는 20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골목 바로 옆에 있던 계명대학교가 대구 달서구에 성서캠퍼스를 마련해 이전하면서, 이 골목 상권은 점차 활기를 잃었다. 그렇게 생겨난 빈 점포에 예술인들이 작업, 연습, 공연 공간을 하나 둘 차리기 시작했는데, 중심에는 소극장이 있었다. 우전소극장(2005년)을 시작으로 한울림소극장(2008년), 예전아트홀(중구 대봉동에서 2009년 이전해 옴), 빈티지소극장(2009년), 예술극장 엑터스토리(2010년), 고도5층극장(2012년) 등의 소극장 및 극단 연습실이 모여들었다. 소극장은 이 골목에서 예술 작품(연극)의 제작과 공연, 이를 통한 예술가와 소비자(관객)의 만남을 가장 활발하게 이뤄내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울의 연극 중심지 대학로의 소극장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대학로의 26년 된 소극장인 대학로 극장이 폐관한 지난 4월, 오히려 대명공연문화거리에는 소극장함세상이 새로 개관했다. 지금 서울 대학로가 겪고 있는 쇠락과 분명 대비되는 부분이다. 최현묵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극작연출가)은 올해 초 펴낸 저서 '대구연극사'에서 "지금 대구 연극은 1980년대와 같은 소극장 연극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와 다른 점은 1, 2년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소극장이 아닌, 1년 내내 연극이 만들어지고 공연되는 살아있는 연극 전용 소극장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유일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우전소극장부터 올해 갓 문을 연 소극장함세상까지, 소극장들의 좌표를 지도에 모으면 하나의 구역이 보인다. 지금 대구가 꾀하고 있는 공연생산도시의 '이미 오래전 다져진 체력'을 발견할 수 있는, 대구 소극장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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