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광복절에 어디 가세요? 뭐 맛있는 거 잡수시려나 봐요." "아니. 교회 가는데 왜? 광복절에 무슨 맛있는 걸 먹어?" "초복, 중복, 말복, 광복이잖아요." 그토록 진지했던 어린 조카의 명대사가 아직도 광복절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라니, 하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과연, 해방 70년이 되도록 분단을 그대로 이어가야 하는 민족의 아픔을 느끼려나?
굶어 죽는 북한 주민이 엄청나다고, 너무 배고파 죽기 살기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식량을 구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 두만강가로 간 게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조선족과 함께 숭선 국경마을 강바닥에 앉아, 이렇게 강폭이 좁으니 한달음에 저쪽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때였다.
한 중년 여성과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강가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품에서 천천히 그릇을 꺼내더니 강물을 담아 우리 쪽을 힐끗 쳐다보며 한 모금 마시고는 아이에게도 물그릇을 건네는 것이었다. 아이는 마치 사약을 받는 것처럼 물그릇을 들고 한참을 허공만 바라보다 마시는 시늉만 하고서 다시 그릇을 건네었다.
바로 지척에서도 굶주린 아이에게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구나, 이게 두만강 푸른 물에 새겨진 분단의 현실이구나 생각하며 참 많이 울었다. 작년에 가 보았더니 두만강은 철조망으로 꽁꽁 싸여 있었다. 그즈음 두만강을 건너 식량을 구하러 온 북한 여성을 중국인 집에서 만나 송홧가루 두 부대를 사 주면서 통일되면 꼭 만나자고 했는데, 하긴 겁이 나는지 이름은 알려주지 않고 나이만 알려주었다. 나와 동갑이었다.
북한 주민이 굶어 죽어가는데 도와주자고 하니, 소위 진보라 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사회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보수라 하는 사람들은 식량을 주면 몽땅 군량미로 갈 텐데 그냥 두자, 안됐지만 굶어 죽으면 북한 정권이 붕괴되어 쉽게 통일될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약간 신나하는 사람까지.
통일은 절대 좌우의 논리로, 이데올로기의 놀음으로는 안 되겠구나. 양쪽이 결국 피를 봐야 통일이 되는 거라고 부추기는 세력 말고, 어렵더라도 서로 만나려고 하는 시민의 힘이 필요하겠어. 그러지 않고서, 생명에 대한 사랑 없이 설령 통일이 된다고 해도 생난리가 나겠구나.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야,
두만강 푸른 물은 그렇게 나에게 일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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