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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노가다와 함바집

박 승 주
박 승 주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일명 '노가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원래 일본어의 '도카타'(土方)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일본어에서 도카타는 도로공사나 치수공사, 건축현장의 토목작업자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토목작업자 중에서도 특히 자격이나 기술이 별로 필요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일일노동자를 일컫는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차별용어라는 인식이 있어 그다지 쓰이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식민지 시절의 잔재인 이런 용어들의 어원이나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건축 공사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들이 대부분 일본어이거나 일본어의 잘못된 한국식 발음 내지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조합된 단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요 며칠 '시간과공간연구소'의 의뢰로 건축이나 공업기술 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의 어원과 그 용례를 정리하는 작업을 돕고 있다. 주로 일본어와 우리나라 현장 용어 간의 의미의 차이와 그 용례 등을 검토하는 일이다. 이 작업은 먼저 연구원들이 수집한 용어를 일본인에게 의뢰하여 어원 추적을 하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다음 마지막으로 현장 경험이 풍부한 목수에게 최종 확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작업은 '북성로 일원 역사전통 문화마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북성로 일대에 형성된 공업 장인의 기술을 기록하고 전승하기 위함이다. 그 취지는 근대시기 북성로에 형성된 근대 공업기술 중 대표적인 공구기술 장인 등을 기반으로 한 기술생태계, 기술자산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북성로 특유의 공구기술 자산을 바탕으로 한 현장 인문학을 육성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시간과공간연구소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연구원들이 북성로 공업기술의 기원을 추적하고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디모도'나 '핫바리' 등과 같은 어원이 불명확한 용어들을 접하는 경우가 잦았고, 그래서 공업사나 건축 현장과 같은 곳에서 기술자나 목수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근대 공업기술 용어들의 어원과 의미, 용례 등을 한 권의 사전처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정리한 현장 용어는 대략 463개 정도이다. 이 중 자주 접한 몇 가지 용어를 소개하자면, '디모도'라는 용어는 '데모토'(手元) 즉 허드렛일을 하는 조력공 내지는 인턴의 의미를 가진 일본어의 한국식 발음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사현장 식당을 '함바집'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쓰이는 '함바'라는 말도 알고 보면 일본어 한바(飯場)에서 온 말이다.

이러한 식민지 시절에 들어온 일본어가 지금은 많이 순화되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건축이나 공업 기술 현장에서는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런 용어들은 점차 우리말로 순화할 필요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지난(至難)했던 근대기술생태계의 일부분으로서 그들의 언어를 기록해 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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