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연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것도 아닌데, 요즘 신문에는 '황제 경영' '왕자의 난' '골육상쟁' '피투성이 후계 싸움'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으니 아주 이상한 상황이 아닌가. 롯데 경영권 분쟁을 표현한 것이지만, 싸움의 전후 사정을 보면 아주 적확한 단어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땅콩 서비스가 잘못됐다고 여객기 회항을 지시할 수 있고, 총수의 손가락질만으로 이사 전부를 해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조선시대 왕들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민주화'개방화로 대표되는 요즘 시대에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기에 회자되는 농담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재벌 2세'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롯데그룹 사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TV의 막장 드라마에 숱하게 등장한 재벌가의 민낯이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모두 알고 있다. 흔히 드라마에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가족 간의 음모와 암투, 권모술수, 정치권 로비, 불륜 등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등장인물들도 한결같이 비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 세계 여느 유수의 집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 한국의 재벌들은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독단적인 경영 형태, 편법을 동원한 경영권 승계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 가족 간의 지분 다툼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10대 재벌그룹 중 가족 간에 경영권 분쟁을 벌였거나 벌이고 있는 곳이 7곳이라고 하니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것은 한국 재벌에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겠는가.
사실 롯데그룹은 그리 친서민적인 기업은 아니다. 국민 누구나 일주일에 몇 번씩 롯데에서 물건 하나쯤은 사지만, 기업 풍토와 문화가 공격적이고 탐욕스럽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굴뚝산업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소매와 유통, 서비스업에 치중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무너뜨리는 주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른 재벌은 소규모 자영업자와의 경쟁을 회피하려 애썼지만, 롯데만큼은 마트 사업 등을 통해 전국의 자영업자들을 피폐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이런 행태이다 보니 롯데의 경영권 분쟁이 국민적 공분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먹고사는 데 열중하느라 '경제 민주화'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재벌이 잘못을 하더라도 국가 경제를 위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더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 온 것 같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라면 아버지도 필요 없고 형제도 필요 없다는 이런 재벌가를 위해 국민들이 더 이상 관용을 베풀 필요가 있을까. 가족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턱이 없다. 오직 자신의 안위와 탐욕만 채우면 되지 않겠는가.
18세기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세습군주제를 가리켜 한 말이 있다. '어린아이와 괴물, 바보 천치들을 국가 수반으로 앉히는 멍청한 제도다.' 재벌 자제들에게 별다른 능력 검증 없이 수만, 수십만 종업원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재 한국 경제의 침체는 재벌 2, 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쥐꼬리만 한 지분을 갖고 편법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 개인 소유인 양 여기는 재벌 일가들의 작태는 더는 용납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재벌이 황제처럼 군림하면서 국민들을 내려다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더 이상 없지 않겠는가. 정치권에서 재벌 개혁을 언급하고 있으니 바람직한 성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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