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파렴치 범죄의 공소시효

에드워드 히스(1916~2005)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34세 때 하원의원에 당선하면서 정치계에 들어왔다. 40대 초반에 노동장관과 외무장관을 지냈고, 1970년부터 74년까지는 총리를 지냈다. 외무장관 때 영국의 EEC(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주도했지만, 영국을 미국의 위성국으로 생각했던 당시 프랑스 드골 총리의 반대로 좌절됐다.

총리가 된 뒤 EEC 가입에 성공했으나 북아일랜드에서의 무력 충돌,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위기를 겪다가 1974년 선거에서 졌다. 이어 1975년에는 보수당 당수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이때 새 당수가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였다. 히스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1978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후 하원의원으로 지내다 2005년, 89세로 사망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히스는 많은 유명 인사가 그랬듯 독설가였다. 그는 영국과 앙숙관계라고 할만한 독일에 대해 '우리가 독일의 통일을 지지해 온 것은 당연하다. 어차피 안 될 것이니까'라고 비아냥거렸다. 총리 시절 자신이 교육부장관으로 기용했던 마거릿 대처가 뒤에 총리직에 오르자 '저 피비린내나는 여인'이라고 했다. 히스는 대처 때문에 자신이 당수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해 평생 원한을 가졌다고 한다.

총리를 지낸 지는 40년, 사망한 지도 10년이 지난 히스가 요즘 영국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됐다. 최근 영국 언론은 독립기구인 경찰불만처리위원회(IPCC)의 발표를 인용해 경찰이 히스 전 총리의 아동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PCC는 전직 경찰관의 증언을 인용해 20년 전, 한 범죄 사건 피의자가 경찰에서 히스 전 총리의 소아 성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하자 수사가 중단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수사는 런던경찰청 등 4곳에서 진행 중이며, 히스 재단 측은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든, 영국이든 피의자가 사망하면 형사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 역시 혐의가 입증돼도 피해 당사자가 민사적으로 소송을 내지 않으면 어떤 제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히스 전 총리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먼 나라에서 벌어진 가십성 추문이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확실한 교훈을 하나 준다. 파렴치한 짓이 생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그 업(業)은 죽음으로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렴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영원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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