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9] 무정

온몸을 꽁꽁 싸매고 눈을 뜨면 동공마저 시리던 몇 해 전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방금 출동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언 몸을 녹이려고 난로 앞에 모여 시시한 농담을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또 출동 벨이 울리고 신고 내용이 스피커를 울렸다.

"구급출동! 위치는 동구 ○○동 ○○○번지 4층 주택으로, 아버지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구급출동하세요!"

선배와 함께 간단한 문 개방 장비를 챙겨 구급차에 올라탔다. 사이렌을 울리며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현장에 도착했다. 들것과 응급장비, 문 개방 장비를 꼼꼼히 챙겨들고 건물 입구에 서는 순간 우리의 코는 쉽게 맡아 볼 수 없는 냄새에 반응했다.

"반장님, 냄새가 좀 이상한데요."

"그래. 느낌이 별로 안 좋은데."

비록 자주 맡을 수는 없지만 몇몇 직종의 사람들만 알 수 있는 특유의 냄새는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를수록 불안한 냄새는 더욱 심해져 3층을 지날 땐 코를 막고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4층에 도착하니 신고자로 보이는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듯 만 듯한 나이의 여자와 경찰관 2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19 아저씨 죄송해요. 아빠가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어서 신고했어요."

신고를 한 여성은 이런저런 사정을 천천히 침착하게 경찰관과 우리에게 설명했다.

"냄새가 좀 심하네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자 고개를 끄덕이며 불길한 예감을 공유했다.

챙겨간 장비로 문 개방을 준비하는 동안 선배가 문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잠겨 있을 거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쉽게 문이 열렸다. 순간 심각하게 부패한 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더욱 강하게 우리를 덮쳤다. 나의 눈으로 확인한 내부의 상황은 예상보다 더욱 참혹했다. 급히 문을 다시 닫았다. 놀라움에 무의식적으로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짧은 순간 나의 눈으로 확인한 내부의 모습을 아직은 어려보이는 딸에게 쉽게 보여줄 수 없었다. 나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상황을 딸에게 보여 줄 수밖에 없는 나에겐 어쭙잖은 위로의 한마디와 문을 다시 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저기….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신지가 꽤 오래된 거 같습니다. 다른 가족들에게 연락을 우선 하시는 게…."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을 다시 열어 딸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 잔인하기만 했다. 딸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만 두어 번 끄덕일 뿐이다.

"우선 저희와 경찰관이 먼저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서요….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다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밖과 별다른 온도 차가 없었다. 오히려 오싹함에 더 추위를 느꼈다. 커다란 침대 위 이불에 덮인 시신은 웅크린 자세로 이미 부패가 심해 검게 변해 있었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체액이 흘러 침대와 이불은 물론 방바닥까지 검붉은 색이었다. 수분은 이미 증발해 시신은 건조하게 말라있었다. 추운 날씨 탓에 시신을 훼손할 수 있는 벌레는 없었다. 방 안엔 작은 텔레비전 1대와 몇 개의 빈 소주병만 시신과 함께하고 있었다. 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차마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주검을 딸은 한 방울의 눈물도, 조금의 놀라움도 없이 무덤덤하게 보고만 있었다. 딸은 이런 상황을 우리에게 설명하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한 달 전 아빠가 전화했어요. 집에 쌀과 기름이 없다면서…."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한파를 기록했다는 그해의 겨울을 먹을거리와 난방 없이 지내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쓴 소주 한 잔으로 겨우 체온을 유지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문도 잠그지 않고 남루한 이불 속에서 한껏 웅크린 채 지난 인생에 대한 망상으로 혹한의 겨울을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죽어가는 동안 결국 아무도 잠겨 있지 않은 저 문을 열어 보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외로움은 그 주검마저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구급대원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더 이상 없었다. 장비를 챙기고 딸에게 웅얼거릴 수밖에 없는 인사를 하고 구급차로 돌아와 상황실에 무전보고를 했다.

"현장 확인한바, 사망 시간이 상당히 경과하여 부패한 상태임. 명백한 사망으로 미이송 귀소 중."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비참한 아버지의 주검과 그것을 대하는 딸의 모습은 속사정을 알 수 없는 나에겐 그저 너무 무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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