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수집해 보관하다 1981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오구라컬렉션에 대한 반환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본지 7월 30일 자 2면 보도) 가운데 당시 자신이 쓴 글씨도 함께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서예가 이봉호(81) 씨. 이 씨는 1941년 당시 7세 때 남선(南鮮)전기회사 사장이던 오구라가 대구 달성공원으로 자신을 불러 글씨를 쓰게 했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7세 전에 쓴 글씨는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 일본에서는 칠세서(七歲書)를 귀히 여긴다고 함)한다는 관습이 있는가 봐요. 제가 고향(고령군 쌍림면)에서 글씨를 좀 썼는데, 그 소문을 듣고 오구라가 부른 것 같아요."
이 씨는 당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간 온종일 글씨만 썼다고 했다. "이유도 모르고 그냥 글씨만 썼어요. 글씨를 쓴 대가로 관광하고 감귤을 얻어먹은 기억이 납니다."
5대 장손인 이 씨는 어릴 때부터 서예에 자질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종이가 귀해 대팻밥에다 글씨 연습을 했어요. 제법 잘 썼던지 우리 집에 온 손님들이 얻어갈 정도였으니까요."
이 씨는 오구라는 일본이 패망하자 돌아갈 때 수천 점의 문화재와 함께 자신의 글씨도 가져간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일본 곳곳에 이 씨가 쓴 글씨가 보관돼 있는 것을 증거로 들었다. "시즈오카 상양고미술관에 '춘만대계'(春滿大界)라는 글씨가 있고, 후쿠오카 고구라미술관에도 '애송당'(愛松堂), '송죽'(松竹), 그리고 여러 곳에 보관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 씨는 또 1985년 10월 20일 자 주니치(中日)신문에 시즈오카에서 열린 일본 유명작가 100인전에 자신의 글씨가 전시된 기사도 증거로 제시했다.
이 씨는 일본인들은 글씨를 위조해 파는 사람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추사에 이어 요즘은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위조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팔아먹고 있잖아요."
2005년 북관대첩비 반환에도 일조했던 이 씨는 일본으로 간 문화재는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는 본래 있던 자리에 갖다놔야 제 빛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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