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베테랑

비열한 재벌에 반기 든 영웅담 관객은 즐겁다

#"한 번 꽂히면 끝을 본다" 형사 황정민

#"세상 무서울 것 없어" 재벌 3세 유아인

#의문의 화물차 추락사건 배후엔 재벌이…

#류승완 감독표 화끈한 액션신 더위 싹!

올여름 극장가 성수기에 메이저 배급사들이 각각 주력 상품으로 미는 일명 '빅4'('암살' '베테랑' '협녀' '뷰티 인사이드')가 구성되었다. 여름 시즌에만 3천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고 하니 이 기간에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올 확률이 높다. 영화배급사들은 최성수기에 임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전하는 관객도 즐겁다. 2주 전에 개봉한 '암살'의 흥행이 쾌속 질주하는 가운데, 지난해 '명량'의 위치를 어떤 영화가 차지할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상반기 한국영화가 질적인 면이나 흥행적인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면, 여름방학 시즌에 공개된 '암살'과 '베테랑'은 한국영화의 저력을 확인하게 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베테랑'은 안하무인 재벌 3세를 쫓는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짝패' '부당거래' '베를린' 등 액션영화 전문 감독인 류승완의 10번째 연출작이다. 황정민, 유아인, 오달수, 유해진의 멀티캐스팅 조합도 흥미를 끈다. 감독에서 배우까지 강력한 티켓 파워의 승자들이 뭉친데다, 유아인의 첫 블록버스터 출연에 생애 첫 악역 도전이라는 점도 관심의 대상이다.

영화는 한마디로 류승완표 통쾌한 액션영화 완성형이다. 한 번 꽂힌 것은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안하무인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인다. 서도철은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수사대 일원으로서 움직이는데, 20년 경력의 승부사 오팀장(오달수), 위장 전문 홍일점 미스봉(장윤주), 육체파 왕형사(오대환), 막내 윤형사(김시후)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겁 없고, 못 잡는 것 없고, 봐주는 것 없는 경찰들이다. 조태오는 회사 단위로 움직이며 초특권층의 권력을 십분 활용한다. 그의 곁에는 오른팔 최상무(유해진)가 모든 문제들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한 화물차 운전자의 의문의 추락 사건을 쫓던 서도철은 이 사건 배후에 엮인 재벌들의 비인간적인 부도덕함에 치를 떨며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한다.

공명심, 정의 대 자본, 권력의 싸움이다. 서민 대 재벌의 싸움, 99% 대 1%의 싸움, 을 대 갑의 싸움이다. 자본을 쥔 자가 정치를 움직이고,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며, 그 가운데 대다수 서민들은 죽어나가는 현재의 한국사회 한복판을 정확하게 헤집는다. 그래서 화끈하게 거침없이 내달리는 액션신에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상쾌함을 느끼는 와중에도, 재벌 3세 주위에 포진한 도덕 불감증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한없이 불편하다. 이 점이 영화를 돋보이게 한다.

적당히 속물적이지만 마지막 정의의 보루는 결코 놓지 않는 서도철 형사 같은 사람이 과연 있을지가 의문인 대한민국에서 영화는 대중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준다. 이전 '부당거래'가 경찰과 검찰, 사회지도층 그룹이 서로 공조하며 비리를 저지르면서 대다수 서민을 속이는 리얼리티를 섬뜩하게 그려내었다면, '베테랑'은 더욱 대중친화적으로 다가온다. 덜 꼬여 있고 더 통쾌하다.

그러나 영화를 마냥 웃고 즐길 수 없는 것이, 조태오가 저지르는 많은 해프닝들이 실제 뉴스나 가십거리로 들어왔던 재벌 상속자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행태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허구가 아니라 실재다.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는 것이 '어이' 없는 것이라고 나름의 정당한 기준을 제시하는 재벌 3세의 비열한 얼굴을 우리는 자본, 정치, 법 영역에서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비굴하게 돈에 무릎 꿇지 않고 부당한 권력에 반기를 드는 서도철의 영웅담은 판타지일망정 가슴을 뻥 뚫어준다.

온갖 기이한 일들이 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사람들은 숨죽여 순응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저항 역사를 되새기는 '암살', 그리고 부당함에 대한 일갈이 있는 '베테랑'을 보러 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분노 한 자락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지금 극장가는 활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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