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을이 다가온다'는 절기인 '입추'다. 입추, 말복 지나면 날씨가 바람 한 줄기에 서늘해지기 시작한다지만 대구의 날씨가 그렇게 쉽게 식는 날씨가 아니다. 1년 중 가장 더울 때인 7월 말부터 8월 초의 날씨보다는 덜하겠지만 '움직이면 땀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날씨에도 묵묵히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며 굵은 구슬땀을 흘리는 청춘들이 있다. 기술노동자들과 젊은 농민들이 각각 산업 현장과 농업 현장에서 더위와 싸우고 있고,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내는 이들을 다독거리기 위한 봉사활동에 나선 청춘들도 그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더 재미있는 공연을 위해, 또는 사람들과 음악을 공유하기 위해 연습실에서, 혹은 뜨거운 길거리에서 팥죽땀을 흘려가며 연습과 공연에 매진하는 청춘들도 있다.
이번 주 매일신문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 매진하는 청춘들의 땀을 기록했다. 미래를 위해 땀 흘린 청춘들에게 에어컨처럼 시원한 앞날이 있길 바란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 산업현장의 청년들
산업현장에서 청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앞으로의 꿈을 위해서 산업현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혀 내일을 준비하는 청년은 분명 어디엔가 존재한다. 그래서 한 주 내내 뜨거웠던 대구의 산업현장에서 자신만의 기술을 키우며 구슬땀을 흘리는 청년 두 명을 만났다. 이들은 대구의 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하는 박우석 씨
낮 최고기온이 38℃까지 올라간 5일 대구 서구 비산동에 위치한 자동차 정비공장인 '영광정비'의 정비공들은 그늘막과 선풍기에 의지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기본 경력 20년 안팎의 베테랑 정비공들 사이에서 10년 경력의 박우석(32) 씨는 '막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젊은 정비공이다.
박우석 씨는 이날 선풍기를 틀어놓고 한 자동차의 뒷문을 조립하고 있었다. 찌그러지거나 부서진 자동차의 문짝이나 범퍼 등을 고치는 이 공장은 실내 작업장이 없기 때문에 항상 더위와 싸워야 한다. 우석 씨를 만난 것은 정오가 다 돼 가는 시간이었기에 공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고, 우석 씨는 연신 땀을 훔쳐가며 자동차 뒷문 문짝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늘막과 선풍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문짝이나 범퍼에 들어갈 철판이 햇볕과 공기에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 때로는 잡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우석 씨는 개방된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정비공장 도색 부스는 진짜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고 페인트를 뿌려야 하기 때문에 환기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페인트가 날릴 수 있어 선풍기도 사용할 수 없고, 페인트를 뿌린 뒤에는 80℃로 도색 부스의 온도를 올려 건조와 열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우나가 따로 없다.
"작업이야 이미 어느 정도 숙달돼 있으니까 어렵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름은 날씨가 더운 데다 공장의 열기를 그대로 안고 일해야 하니까 더 힘들죠. 겨울을 기다리긴 하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추워서 힘든 게 또 있어요.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네요. 따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선풍기와 그늘막으로 만족해야죠."
자동차를 좋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정비공의 길을 걷기 시작한 우석 씨는 "이 직업이 공부와 노력을 멈출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 해에도 새로운 디자인의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기에 그에 맞게 자동차 문을 새로 제작해서 맞추려면 새로운 차에 대한 지식도 계속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면 적어도 5년 동안은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계속 배워야 하며, 숙련된 기술자들도 계속 기술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는다. 우석 씨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정말 수리가 될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차들이 멀쩡한 차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때"라고 말했다.
우석 씨는 지금 배운 자동차 정비 노하우와 지식을 살려 자신만의 정비공장이나 카센터 사장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도 우석 씨가 더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9개월 전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가장이 되면서 '가정을 위해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10년이나 15년 뒤에는 제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겁니다."
◆절삭공구 부품을 생산하는 박수형 씨
6일 오전 11시 대구는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이날 달서구 파호동 성서산업단지에 위치한 '에스제이툴스' 작업장에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정밀기계를 이용해 작업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에스제이툴스'에서 일하는 박수형(27) 씨는 CNC(Compter Numerical Control'컴퓨터 수치 제어) 머신 앞에서 절삭공구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비록 더운 날씨였지만 크게 틀어놓은 아이돌 댄스 음악이 이들에게 힘을 주는 듯했다.
수형 씨는 이 회사에 들어온 지 2년이 다 돼 간다. 전문대학에서 기계와 컴퓨터를 전공한 그는 다른 것보다 자신이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얻은 기술이 보여주는 비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저희 회사가 자동차 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절삭공구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절삭공구 부품 생산에 대한 기술자들이 많지 않아요. 게다가 요즘 중국 쪽에서도 저희 회사와 제가 가진 기술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들었어요. 자부심이 생길 만하죠."
워낙에 정밀도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여름과 더위는 이들에게 여러모로 힘든 시기다. CNC 머신의 온도가 올라가면 정밀도가 떨어진다. 날씨가 선선한 겨울이야 온도가 금방 내려가지만, 여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부품의 불량률도 덩달아 올라간다. 그리고 부품 제작의 원재료인 텅스텐 카바이드, 즉 '초경'이라 불리는 특수금속의 원가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불량률이 올라가면 회사에 돌아오는 타격도 크다. 수형 씨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 주문자의 요구 사항에 맞춰 만드는 특수제품이다 보니 정밀도 부분에서 더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된다"며 "이를 맞추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여름이라 불량률이 오를까봐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더운 날씨로 열대야가 지속되고 해가 늦게까지 떠 있는 요즘 날씨에는 피로도 쉽게 쌓이기 마련이다. 수형 씨는 "12시간 2교대로 근무하는데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해야 하는 데다 해까지 늦게 져서 잠을 푹 자지 못하면 다음 날 작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름철을 힘든 작업장에서 보내지만 수형 씨는 이 일에 만족한다. 앞으로의 비전은 둘째치고 무엇보다 이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기 때문이란다.
"일을 계속해 보니 제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게다가 전망도 좋고요. 앞으로 5~1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기술력을 키울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 분야의 '마이스터'가 된다는 생각으로 앞날을 준비해 나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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