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는 꿈도 있었지만, 일단은 먹고살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을 누비며 고단하게 일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골목에서 일궈낸 업(業)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업이 돼 있었다. 인생을 되돌아봤다. 평생 골목길을 지키며 산 셈이었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골목길 사람들 얘기다. 유목민들에게 초원이, 농민들에게 들판이, 어부들에게 바다가 삶의 터전이라면, 그들에게는 골목길이 있었다.
◆대구근대골목 상업 변천사 산증인, 홍백원 이화숙 씨
대구 종로에서 진골목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다기와 생활자기를 파는 가게 '홍백원'이 있다. 이곳 주인 이화숙(82) 씨에게도 골목은 평생 삶의 터전이었다. 30여 년 전부터 도자기 장사를 시작했지만, 실은 젊었던 1950년대부터 종로와 염매시장 등에서 이런저런 장사를 해왔다. 남성로를 중심으로 하는 대구근대골목의 역사, 특히 상업 변천사를 현장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종로와 염매시장의 최전성기는 아이러니하게도 6'25전쟁 때였습니다. 전국에서 대구로 피란 온 사람들 중 화교를 비롯해 중국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 사람들이 종로와 염매시장의 큰손이 돼 상권을 활성화시켰습니다. 염매시장 생선전은 당시 전국적으로 봐도 손에 꼽힐 정도로 컸어요."
이화숙 씨는 대구 토박이다. 1932년 남산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말에 유년기를 보냈다. "아이들에게는 그 시절이 좋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집, 학교, 학원으로 정해져 있는 길만 다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학교 마치면 해질 때까지 골목길을 누볐습니다." 활동 무대는 집과 학교 근처 골목길만이 아니었다. "칠곡 가산에 가서 솔방울을 따기도 했고, 가창과 하양 등 대구 외곽 지역도 모두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쏘다닌 곳이에요. 지나가는 소달구지가 있으면 아저씨께 '태워 주이소' 하고는 얻어 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하던 때였다. 그와 함께 한국 문화를 말살하던 때이기도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요즘 이화숙 씨는 그때의 기억이 남다르다.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안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한글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당돌하게 따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한글은 못 썼어요. 일본어는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배웠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물포, 대구지물 김종대 씨
통행량이 많은 성문 주변에는 시장이 들어서기 마련이었다. 과거 대구읍성의 경우 성문들 중에서도 남쪽 영남문이 가장 통행량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주변에는 난전이 형성됐고 이어 점포가 하나둘 들어섰다. 그래서 영남문이 있었던 현재의 종로, 염매시장, 약령시 일대는 1907년 친일 관료였던 경상도관찰사 서리 겸 대구 군구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허문 뒤에도 한동안 큰 상권을 형성했다. 이곳에서 1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가게가 있다. 1907년에 개업한 '대구지물'이다. 현재 전국에 남은 지물포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김종대(68) 씨는 대구지물의 3대 계승자다. 10대 때인 1960년대부터 대구의 지물업계에서 일했다. 원래 대구지물에서 종업원 생활을 했고, 이후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가 35세 때 대구지물을 이어받았다. 2대 계승자 김관채 씨가 자식들이 다른 길을 걷자 성실하게 일하던 김종대 씨를 후계자로 선택한 것이었다. 김종대 씨는 1996년에는 다시 자신의 아들(4대)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대구의 지물업은 인근 약령시와 함께 번성한 역사를 갖고 있다. "약령시는 전국에서 한약재가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한약재를 담는 '첩지' 수요가 많았어요. 엄청난 양의 한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물포에서 다룬 여러 종이들 중에서도 한지는 김종대 씨에게 특별한 존재다. 김종대 씨는 자연스럽게 한지 예찬론자가 됐다. "한지 원료는 닥나무예요. 실은 동아시아 곳곳에서 닥나무로 종이를 만듭니다. 그런데 한국 한지가 가장 우수합니다. 한국에서 나는 닥나무 품질이 가장 좋아서죠. 옛적에 중국 선비들이 우리나라 한지에 글을 쓰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여겼을 정도입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한지의 수명이 8천 년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앞서 김종대 씨는 한지의 우수성을 먼저 연구해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현재 대구지물이 있는 2층 건물에도 얘깃거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건물의 다다미, 벽칠, 창문 등의 양식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 대학의 건축학도들이 보고서나 논문을 쓰기 위해 들르곤 한단다. 이전에는 직원들이 사무를 보던 장소였지만, 지금은 종이 보관 창고로 쓰이고 있다.
◆대구 알리는 진골목 명소 찻집, 미도다방 정인숙 씨
정인숙(62) 씨는 대구근대골목의 유명인사다. 지난 35년간 미도다방을 노년 세대의 사랑방으로 운영했고, 대구근대골목을 다녀간 방문객들이 대구 하면 맨 먼저 떠올리는 찻집으로 꾸몄다. 그는 27세 때였던 1982년 대구 중앙파출소 뒤편에 있던 도가니다방을 인수했고, 이듬해 미도다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미도(美都), 그러니까 아름다운 도시의 다방이라는 뜻이다. 미도다방은 이후 다방 이름을 따르듯 대구를 찬미하는 문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됐다. 이름 날리던 정치인들도 많이 다녀갔다.
미도다방은 진골목의 한 건물 2층으로 이전했다가 2013년 12월 지금의 옛 천호탕(목욕탕) 건물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대구 도심 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녔고, 무엇보다도 정인숙 씨가 운영을 그만두지 않은 덕분에, 단골들은 수십 년째 미도다방을 찾으며 일상을 담고 있고, 단골이 아니더라도 오랜만에 미도다방을 찾으며 추억을 쌓고 있다.
"지나가다가 '어떻게 지내노?' 하며 들르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대구 사람들의 끈끈한 정이 미도다방을 존속시켰습니다. 광주에서 온 한 손님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전라도 광주와 전주에 있던 오래된 다방들은 결국 문을 닫았다. 대구가 참 부럽다.'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카페 전성시대에도 미도다방이 그대로 다방으로 가는 까닭이다. 한방차를 고집하고, 정인숙 씨가 늘 한복을 갖춰 입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민간 대구관광안내센터, 공감게스트하우스
앞서 대구의 골목을 지켜온 공간들에 비하면 2013년 봄에 문을 연 종로 골목의 공감게스트하우스는 신출내기다. 하지만 면모를 좀 더 살펴보면, 앞으로 대구의 골목을 굳건히 지켜나갈 공간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곳 건물 1층은 대구를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안내센터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근대골목투어 코스 내에서도 지도 및 관광안내 책자가 많이 배부되는 곳으로 손꼽힌다. 공감게스트하우스에는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을 구사하는 직원 10여 명이 있다. 이들은 최근 대구치맥축제를 찾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공감게스트하우스에 들렀을 때 직접 인근 진골목 일대를 안내하기도 했다. 허영철 공감게스트하우스 소장은 "앞으로 더욱 다양한 국가에서 관광객이 올 것에 대비하고 있다. 대구를 찾는 외국인들의 자유 여행 비중이 늘고 있다. 관광객 수가 많은 중화권 국가들만 봐도, 중국은 아직 패키지 관광객이 많지만,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점점 자유 여행을 선호하고 있다. 여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통역과 가이드 등의 인력을 게스트하우스가 갖춰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게스트하우스는 새터민의 초기 정착을 돕는 사회적기업 '공감'이 사업 기금 마련을 위해 운영하는 시설이다. 그래서 이곳은 지역 관광 활성화와 함께 남북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두 요소를 묶는 시도를 꾸준히 펼치고 있다. 허 소장은 "최근 대구치맥축제 개최 이후 대구를 찾는 방문객들이 치킨과 맥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대구=치맥'이라는 관광 이미지는 어느 정도 형성된 셈이다. 그래서 요즘 공감게스트하우스의 저녁은 종종 치맥파티로 꾸며진다. 허 소장은 "대동강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대구치맥축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공감게스트하우스는 올가을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 영화 작품들을 상영하는 행사도 가질 계획이다.
◆대구 골목길 숨은 이야기 들려주는 주민 해설사들
앞서 살펴본 네 곳은 모두 대구 중구청이 지난달 위촉한 골목 주민 해설사의 집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약령시 불로약업사의 이승로(55), 대아약업사의 이철로(52), 종로 귀빈떡집의 반미영(54), 수제화 골목 수창피혁의 안상열(60), 아미제화의 박연득(55), 향촌동 대보식당의 김태식(50) 씨가 함께 골목 주민 해설사로 위촉됐다. 대부분 골목길에서 평생 가업을 일궈온 사람들이다. 대구 중구청은 골목 주민 해설사를 점차 늘려 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대구를 찾는 방문객들은 그동안 대구의 골목길에서 들려주던 이야기와 또 다른 이야기들을 이들로부터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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