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계절인 여름이다. 모두 바다로, 계곡으로 더운 여름을 즐기려고 떠날 때,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는 지역경찰관들에게는 한여름 밤 열대야보다 더 무서운(?) '주취자'들로 더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며칠 전 늦은 밤에 파출소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또 '술 취한 아저씨가 택시에서 주무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파출소 문을 열고 택시로 다가가는데 나이 지긋하신 택시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려 손님이 술에 취해 일어나지 않는다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뒷좌석 문을 여는 순간 택시에 누워 자는 사람은 남자가 아닌 여자분이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으로 큰 대(大)자로 뻗어 있는데 민망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택시기사분이 지구대로 데리고 왔기에 망정이지, 길거리에 이렇게 누워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일단 여자 손님을 깨워 보았지만 더운 날씨에 과한 술 탓에 숙면(?)을 취하고 있어 어찌 집으로 돌려보내나 하던 차에 마침 여자 손님 가방에서 전화벨이 울려 전화를 받아 가족에게 주소를 물어 택시기사에게 주소로 안내해 주고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또 하루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 "길가에 사람이 누워 있다"라는 112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아저씨가 아파트 들어가는 오르막길 인도와 차도 사이에 걸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고, 그 옆에서 가지런히 지갑과 휴대전화를 두고 신발까지 벗고 자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큰일 나요. 어서 일어나세요. 집이 어디세요?"라고 깨웠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아저씨는 주변에 있던 모기들 때문에 몸이 가려운지 팔, 다리를 긁으면서 겨우 일어났다. 지갑과 휴대전화를 챙겨주면서 귀가하도록 도와주었는데 갑자기 우리 팔을 뿌리치면서 "머꼬, 이 XX들!"이라고 욕설을 하면서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와 모기까지 괴롭혀 짜증이 확 올라오는 것을 꾹 참은 뒤 아저씨를 다시 부축해 집까지 순찰차로 태워 준 적도 있다.
매년 여름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112 신고 건수가 더 많다. 그중에서 술 마시고 싸우거나,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등 주취자 관련 신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달서경찰서 월성파출소는 2014년 1년 신고 건수 중 7, 8, 9월에 신고가 많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주취자 관련 신고가 약 80% 이상이다. 다른 곳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술이 빠지면 삶이 재미없을 것 같다. 필자도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실 것이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란 용어를 많이들 사용하는데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일과를 끝내고 술 한잔하면 정말 즐거울 것이다. 이렇듯 술을 통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듯, 술도 너무 과하게 마시면 독이 된다.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 고성이 오가고 욕설을 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여 112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가는 장면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파출소에 근무하다 보면 주취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방문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경찰관을 보고 반말에 심지어 욕설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경찰관들은 술에 취했으니 잘 달래서 귀가하도록 유도를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 경찰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주취자 관공서 소란'이란 죄목으로 쇠고랑을 채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술 문화가 관대한 만큼 주취자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관대한 것 같다.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많은 경찰관은 다른 어떤 업무보다 주취자 처리로 몸서리를 칠 정도이다. 몇 년 전 경찰에서 주폭과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다. 조폭은 조직폭력배를 일컫는 말이고, 주폭은 술의 힘을 빌려 상습적으로 폭행'협박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술에 취했으니 그냥 이해해야지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제지해서 주폭을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자는 의미이다. '술 먹었으니까'라며 더는 관대한 시각으로 바라보기에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범죄예방과 범죄자 검거 등 경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경찰력이 허비되는 일이 없도록 주취자로 인한 사건 사고가 근절되어 더 행복하고 안전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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