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송들 종전 70주년 기념
반전 초점 전쟁의 참상 보도
히로시마 원폭 맞았으면서도
우익들 아직 못 깨우쳐 아쉬워
일본의 처가에 와 있다. 규슈 남쪽의 가고시마. 워낙 촌 동네라 그런지 벌어지는 일이 없다. 지난 8월 6일 오전 10시쯤 아침식사를 하다가 긴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일까? 알고 보니 그 시간이 70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바로 그 시간이란다. 긴 사이렌은 그날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위한 신호였던 것이다. 단 한 번의 폭발로 그날 히로시마에서는 7만~8만 명이 사망했다. TV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목격담을 들려준다. '삐까'(번쩍), '돈'(쾅)!
종전 70주년이라 그런지 텔레비전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여준다.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느라 분주한 정치권의 분위기와 달리, 방송으로 나가는 다큐멘터리들은 대부분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폭이 얼마나 참혹하고, 특공이 얼마 잔혹하고, 전쟁의 일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인터뷰와 다양한 자료화면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일본 사회의 반전의식은 우리가 우려하는 것보다는 튼튼한 편이다. 실제로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57%로, 찬성 26%의 두 배를 넘는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들. 하나는 사이판 만세절벽 장면이다. 엄마가 투신하기 전에 자기 아기를 절벽 아래로 던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기를 보호하는 게 어미의 본능일 터, 군국주의의 세뇌는 그 본능마저 해제할 정도로 강력했던 모양이다. 나는 일본 정부가 이들의 끔찍한 최후를 자국민에게 감추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웬걸, 그다음 장면에서는 본토의 어느 교장 선생이 전교생을 모아놓고 군대와 함께 옥쇄한 사이판 교민들을 본받으라고 목청을 높인다.
오키나와에서는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군부가 어린 학생들로 유격대를 만들었다. 말이 지원이지 실제로는 강제였다. 그렇게 형을 보낸 아이가 70년 후 노인이 되어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었다. 다행히 형의 죽음을 목격한 대원을 찾았다. 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형은 미군에게 사살당한 것도, 스스로 자결한 것도 아니었다. 부상으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군의관에게 권총으로 사살당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부상자를, 그것도 열댓 살의 아이를 쏴 죽였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가미카제 특공대에 관한 이야기. 자살특공대의 전과는 무려 5배나 부풀려졌다고 한다. 대원들이 어차피 죽은 이의 명예를 위해 없는 전과를 만들어 보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별로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과장된 보고에 기초하여 특공을 위한 특공이 계속된 것이라고 한다. 그 역시 우익들이 선전하듯이 아름다운 죽음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불시착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대원을 아예 기체에 결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국가가 미쳐버린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국민들을 이렇게 학대하고 값싼 소모품으로 소비했다. 하지만 이보다 나를 더 기가 막히게 했던 것은 전직 가미카제 대원의 발언이었다. 투입 직전에 종전이 되는 바람에 살아남은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특공명령을 받고는 내가 가엽다는 생각보다는, 나라가 가엽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변태적인가? 국가는 가해자이고, 개인은 피해자다. 그런데 피해자가 외려 가해자의 처지를 안쓰러워한다. 문제는 일본 사람들 중에서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개인들의 고통보다는 패전으로 인해 성불구가 된 국가를 더 안쓰러워한다. 히로시마에서 증발한 사람들, 폭격으로 타 죽은 사람들, 남양군도에서 옥쇄를 강요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을 다시 발기할 수 있는 국가,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히로시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원자폭탄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그것으로 '우요쿠'(右翼)의 돌머리를 깨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마구 학대하던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를 보며, 또 그 불행한 역사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일본의 정치를 보며, 문제는 국가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확고한 국가관이 필요하다. '국민이 고분고분하면 국가는 싸가지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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