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표출되는 갈등, 특히 공공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민투표가 자주 언급되곤 한다. 1994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투표에 대한 근거 규정이 마련되었고, 시'군 통합 여부, 공공시설 유치, 지역개발 및 공공정책의 추진 여부 등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주민투표의 활용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주민투표는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표시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중 하나이다. 특히 최종 의사결정을 투표로 진행함으로써 공공갈등 해결에 '종지부'를 찍는 성격을 갖는다. 반면, 주민투표의 문제점과 한계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첫째, 주민투표에 회부된 사안은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 투표 참여 및 유효투표수 과반수의 득표로 확정된다. 결국 찬성표가 전체 유권자의 16.7%에 불과하더라도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당성을 담보하기에 미흡하다.
둘째, 투표 방식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린다. 주민투표로 인해 해당 정책과 사안은 '기술적'으로 종료되지만, 지역사회 내 갈등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셋째, 국익과 연관된 국책사업에 대한 주민투표 시행 여부이다. 현행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국가사무와 관련된 사항은 주민투표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삼척 주민투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결과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초법적'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끝으로, 세대 간'지역 간'계층 간 가치관에 상당한 수준의 간극이 있고, 사회적 신뢰 수준이 비교적 낮은 우리나라에서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소수 행동주의자들의 '거부할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행동하는 소수가 법적 대의기관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특히 지역사회 내 공공갈등은 갈등의 원인, 진행 과정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며, 주민투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해야만 할 '마지막 카드'가 되어야 한다.
당면한 영덕 원자력발전소(천지원전) 건설 역시 현시점에서 이 사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진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될 경우 '지역주민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지' '원전 건설에 따른 지역 발전의 청사진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토론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덕군은 2010년 지자체 명의로 원전 유치를 신청한 바 있으며, 부지선정위원회의 객관적 평가를 거쳐 후보 부지로 선정되었다. 원전 건설은 영덕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법적으로는 국가사무여서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
원전 건설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지금, 영덕군에 필요한 것은 질서 있는 참여를 통해 지역주민이 모여 이와 관련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안전과 지역발전 청사진에 대한 토론과 논의를 진행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의견 수렴을 이뤄내는 일이다.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몇몇 단체는 원전 추진을 '정부의 독단'으로 규정하고, 주민 전체의 의견을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방식은 주민투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투표가 가져올 문제점과 후폭풍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올여름 영덕군민이 모여 진행할 뜨거운 토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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