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회 정치제도 개혁] ⑤국회선진화법

국정 발목 잡는 국회선진화법? 與, "새로 고치자" 野 "그대로 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의 행정부 시행령에 대한 수정 권한을 명시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발언 대부분을 국회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는 데 할애했다. 국회가 국가발전을 위해 애쓰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의지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정치적 잇속만 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며 국회의 비능률과 국정 발목 잡기를 적나라한 어조로 꼬집었다.

대통령의 강도 높은 비판에 여당인 새누리당은 억울해했다.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타협과 조율은 불가피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국회 운영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조준사격을 받았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그동안 여야 간 협상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진행됐다"며 "여당 원내대표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단임제 대통령에게 국회는 늘 답답한 존재다. 짧은 임기 중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그 일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할 국회가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축내기 때문이다.

반면 야권과 소수자들은 집권여당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를 경계한다. '일사불란함' 속에서는 소수와 약자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야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다수결의 횡포에 맞서기도 한다. 이 과정의 산물이 바로 폭력국회, 식물국회다. 여야는 이 같은 충돌을 항구적으로 없애고자 지난 2012년 제18대 국회 임기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회 내 물리적 충돌을 없애는 내용의 국회선진화법을 처리했다.

◆물리적 폭력 막으려다 생산성 저하

국회선진화법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아온 여야의 물리적 폭력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주요 내용은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 제한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제도 도입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도입 ▷국회 내 폭력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신속처리 제도와 관련, 대상 안건 지정 요건을 지정 요구(과반수)와 지정 의결(무기명 투표, 5분의 3 이상)로 이원화했다. 또 신속 처리 대상 안건의 본회의 상정 요건을 60일 경과 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자동 상정되도록 했다.

아울러 신속 처리 대상 안건이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요구가 있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소수 정당의 권리 보장을 위해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필리버스터가 발동되도록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은 대형 망치와 전기톱 그리고 최루탄 등으로 얼룩진 18대 국회가 낳은 옥동자"라며 "'최소한 싸우지는 마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한 정치권의 대답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여야가 합의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국회선진화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선진화법 도입 이후 입법 효율성이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18대와 19대 국회 전반기에 각각 발의된 법안이 상임위원회에 상정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이 선진화법 도입 후인 19대에서 20일 더 빨라졌고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 수도 같은 기간 19대에서 69건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비판에 용도폐기 위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은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동참해줄 것을 야당에 강력히 제안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물리적 충돌을 막는 데는 이바지했지만 소수 독재가 정당화되고 법안 연계투쟁이 일상화되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집권당 대표로서 박 대통령이 토로한 답답함에 대한 화답 차원의 메시지다.

새누리당은 현행 국회선진화법이 국회 내 폭력을 없애는 소득이 있긴하지만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지지를 받는 법안마저도 처리까지 330일이 걸리는 현재 상황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의원 152명은 지난달 17일 국회선진화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신속한 판단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반면 야당은 국회선진화법 폐지는 다수당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조치라고 반박했다. 문희상 전 새정치연합비대위원장은 지난해 말 관훈토론회에 참석, "여야 할 것 없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으로 선진화법을 만들었느냐"며 "다시 동물 국회로 가자는 거냐"며 반대 뜻을 보였다.

국회선진화법 폐지 논의는 국회에서 다소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법안 처리 속도를 높일 것이냐,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둘 것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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