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운 올해 여름휴가는 여태껏 가보지 못한 서해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휴가를 떠나는 날 아이들의 눈치를 보니 즐거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저희들은 그냥 집에 있을 테니 부모님만 다녀오란다. 순간, 방망이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지만 겨우 설득하여 함께 가자고 꼬드기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편 마음속으로는 괘씸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너희들이 따라다니기 싫은 이상으로 나도 너희들과 함께 다니기 싫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참았다.
벼락같이 가는 세월 속에서 아이들은 후딱 자라서 우리들 곁을 떠나 저들 갈 길로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붓이 둘이만 남게 된다는 현실을 안다. 지금 우리 선배들이 그렇다. 나는 선배들이 일러준 대로 아이 키우면서 아옹다옹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행복의 시간을 오래 붙들고 싶었다. 그래서 휴가를 그저 놀기만 할 게 아니라 쉬면서도 유익한 시간을 보내도록 떠나기 전부터 나름대로는 꼼꼼하게 준비했다.
오래된 기와가 푸른 하늘을 받들고 있는 전주의 한옥마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경기전을 구경하고 하나라도 놓칠세라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최명희 문학관을 거쳐 부안의 채석강에 갔다.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뜬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무창포 바닷가에서는 수영과 함께 추억을 만들기도 했고 신비의 바닷길을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자꾸 아이들과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년이면 고3이라는 이유로 나와 여행 갈 리가 없을 테고, 그다음 해는 대학생이 되면 엄마와 여행을 떠나기보다는 친구들과 갈 것이고, 그러다 결혼하면 점점 더 멀어질 것이 뻔하다.
이렇게 손꼽아 짚어보니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들은 가기 싫어 억지로 떠난 여행길이었으며 나 때문에 망친 휴가였고, 착각이지만 내게는 다시 오지 않을,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보다 먼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둘만의 시간이 지겨워 나를 부러워하던 선배가 생각났다. 그는 아이 키울 때의 고달픔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라고 했다. 아이들의 등쌀에 고달프다고 하소연하면 그 선배는 고달픔은 서글픔보다 훨씬 낫다며 힘든 고달픔은 견디면 되지만 서글픔은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나도 이번 휴가지에서 감(感) 잡았다. 머지않아 견딜 수 없는 서글픔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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