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 34%
OECD 41개국 가운데 26위 머물러
온갖 실정'스캔들로 정부 권위 실추
자발적 복종 이끌어낼 지도자 대망
권위는 없고, 권위주의만 횡행한다. 요즘의 한국 현실을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야단이고, 교육 현장을 보면 교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선생님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온갖 실정과 스캔들로 정부의 권위가 실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많던 권위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권위 실종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아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최근 이 사건의 면모를 드러나게 할 두 가지 통계조사가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하나는 권위 실종의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조사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가 실종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폐해를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달 9일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가운데 중하위권인 26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국민 10명 중 약 7명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치를 실현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 수준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거의 밑바닥이다.
권위를 상실한 것이 물론 국가기관만은 아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우리나라 사회관계의 질과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국가에서 권위가 실종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중앙공무원교육원이 지난해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예비 사무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임공무원 가치관 및 의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 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의 관료들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돈'과 '권력'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양극화와 기회 불평등으로 경제적 부의 분배가 불공정하게 이뤄진다고 진단하지만, 무려 88.5%에 달하는 예비 사무관들이 돈과 권력이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는 한국사회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우리 사회가 본래 그런데 뭐 그리 놀랄 일이냐고 흘려버리기엔 너무나 비정상적이다. 우리 사회를 짊어질 미래의 엘리트 관료들이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데 노력할지 아니면 올바른 사회진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 힘인 돈과 권력을 좇을지는 모를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 사회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국민은 정부를 믿지 않는데 국가조직은 권위주의적이라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병리적 현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권위 없는 권위주의'이다.
권위를 상실하면 사회는 어떻게 변질될까? 권위는 다른 사람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성이지만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국가지도자와 국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권위는 양날의 칼이다. 자식을 낳는 순간부터 아버지가 되기는 하지만, 자식을 어떻게 대하고 기르느냐에 따라서 아버지의 권위는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정립하는 좋은 권위, 건강한 권위는 반드시 권위를 따르는 사람의 '자발적 인정'과 '존중'을 전제한다.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선생이 선생답고, 지도자가 지도자다워야 그 덕성과 영향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리고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권위는 건강한 사회관계를 위해 필수적이다.
문제는 영향을 미치려는 사람들에게서 자발적 인정과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책임과 도리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권위를 상실하고, 권위를 잃어버린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오직 지위뿐이다. 그들은 밑으로부터의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지시하고 명령한다. 이렇게 권위 없는 명령이 과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권위 없는 권위주의가 불신만 조장할 뿐이라면 자식, 학생,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면 우선 권위주의부터 타파해야 할 것이다. 권위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권위를 갖춘 지도자를 꿈꿔본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