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받는다고 앉아 있으니 눈꺼풀이 천근이다. 마치려면 아직도 삼십 분이 남았다.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는다. 허벅지를 꼬집는다. 아프기만 할 뿐 쏟아지는 잠을 떨칠 수 없다. 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 준 것은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라는 소리였다. 책장을 덮으려니 지렁이 몇 마리가 기어가는 것 같다. 내가 썼지만 무슨 글자인지 도대체 알아볼 수 없다. 지울 수도 없거니와 행여나 누가 보면 남세스러운 일이다.
메모 노트를 갖고 다닌다. 그 노트를 펼치면 다양한 글씨체를 만날 수 있다. 그날그날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글씨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글씨나 비스듬히 누운 글씨는 쓰기 싫어서 억지로 쓴 글씨이고, 공깃돌같이 동글동글한 글씨는 딴엔 멋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는 글씨다. 그렇다면 원래 내 글씨체는 어떤가? 한마디로 말하면 남자 필체다. 나는 내 글씨가 남자 필체인지 모른다. 보는 사람들마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어떤 이는 시원스럽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잘 쓴다고도 한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지 나는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도 내 노트를 보고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언니의 글씨에 비해 내 글씨는 선머슴아 글씨 같다며 깔끔하게 쓰라고 늘 잔소리를 하셨다. 청나라의 유희재가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유희재 선생이 아니라 친정어머니한테서 그 말을 들으며 자랐다. 요즘에도 가끔 어머니의 말씀대로 여성스럽다는 언니의 글씨체를 흉내 내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틀에 박힌 내 글씨체가 어딜 가겠는가.
대구문학관에서는 '누구라도, 언제라도, 무슨 책이라도'라는 3라도 독후감 공모전을 연중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단, 작품은 컴퓨터가 아닌 손 글씨로 원고지에 써서 보내야 한다. 공모한 독후감을 분기별로 심사하는데, 그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원고지에 써내려 간 글씨는 천차만별이었다. 아기자기한 글씨체가 있는가 하면, 또박또박 바르게 쓴 글씨, 눈을 찡그리며 봐야 할 정도로 깨알같이 작게 쓴 글씨,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여 썼겠지만 무슨 글자인지 당최 알아보기 힘든 글씨도 있었다. 예전에는 글씨를 보고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은 글씨를 보면 유희재 선생처럼 그 사람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연필을 바로 잡고 썼는지 아닌지 짐작하기도 한다.
초등 1학년 국어교과서를 보면 바르게 연필 잡는 법에 대해 나와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 듯이 바른 자세가 바른 글씨를 쓰는 데 있어서의 기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연필을 바르게 잡는 방법으로는 첫 번째 손가락과 두 번째 손가락의 모양을 둥글게 하고, 연필을 너무 세우거나 높이지 않고, 가운뎃손가락으로 연필을 받치고, 적당히 힘을 줘서 잡으라고 말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연필을 바로 잡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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