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네팔에서 한국으로 온 푸남라마(33) 씨.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큰 꿈을 안고 먼 이국 땅으로 왔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눈덩이처럼 불어난 병원비와 점점 잃어가는 시력뿐이다. 올해 초 푸남 씨는 자신의 뇌에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신경 근처에 난 종양은 시력에도 영향을 줬다. 지금 푸남 씨의 눈 절반가량은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돌아가는 게 제 꿈이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갔어요. 돈을 벌러 이곳에 왔는데 오히려 모은 돈만 축내버린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요."
◆평범했던 일상에 들이닥친 병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나고 자란 푸남 씨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생활을 동경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한국의 모습은 항상 화려했다. 주위에서 몇 년만 고생하고 돌아오면 네팔에서 좋은 집 한 채는 거뜬히 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2년 전 고향에서 상점, PC방 직원으로 일했던 푸남 씨의 한 달 수입은 10만원 남짓. 푸남 씨는 집도 땅도 없이 소작농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집안을 한번 일으켜 보고 싶었다.
처음 한국에 온 뒤 푸남 씨는 경기도 오산의 한 거울 공장에 취직했다. 밤낮으로 상자를 옮기고 기계 옆에 붙어 일하며 1년을 보냈다. 하지만 한 달에 받는 돈은 1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네팔인 친구가 자신이 일하던 대구의 한 자동차 부품 포장 공장을 소개해줬고 이후 한 달에 120만원 가까운 돈을 손에 쥐었다.
푸남 씨는 한국에서 가정도 꾸렸다. 지난해 겨울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인 남자친구와 고향에 들러 결혼식을 올리고 왔다. 부부는 번 돈 대부분을 각자 부모님께 보내고 남은 돈 몇 푼으로 생활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고된 일로 몸은 힘들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큰 집을 사고 자녀도 낳을 것이란 꿈에 작은 것에도 행복해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푸남 씨는 몸에 조금씩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심한 두통이 평소보다 오래간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시력도 나빠졌다. 공장에서도 실수하는 일이 잦았고 길을 가다 얼굴을 다칠 정도로 넘어지기도 했다. 병세가 심상치 않다 싶어 찾은 큰 병원에서는 뇌종양이라고 했다. 조금만 지체됐다면 종양이 시신경을 손상시켜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에 걸쳐 큰 수술을 받은 푸남 씨의 한쪽 귀와 머리에는 붉은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네팔에 있는 가족에게 수술 사실을 알리면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 것 같아 아직 말하지 못했어요. 결혼 후 1년도 안 돼 간호를 해야 하는 남편에게도 너무 미안해요."
◆고향 지진으로 또 한 번 좌절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또 한 번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려왔다. 카트만두 인근에 규모 7이 넘는 큰 지진이 일어나 고향이 온통 쑥대밭으로 변한 것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가족과 친척에게 수십 번 연락해 봤지만 지진 후 며칠간은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행히 식구들은 지진을 느끼고 집에서 바로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그때부터 양가 부모님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평생을 살아온 집이 큰 지진에 하루아침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난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양가 부모님 모두 텐트에서 지내고 있어요. 제가 아픈 뒤로는 고향에 생활비를 못 보냈는데 집까지 다시 지어야 해 걱정이에요."
지금까지 푸남 씨의 수술, 치료비에 들어간 돈은 약 2천만원. 한국에서 일하며 모은 부부의 돈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다. 게다가 시력 회복과 종양 제거를 위해 앞으로 몇 차례 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해 언제 병원 생활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앞으로 들 치료비와 수술비, 고향 식구들이 살 집 문제 등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가 밝은 모습으로 부모님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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