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동시에 사람은 '죽음'이라는 이름의 최고장도 받는다. 최고장의 집행 시점은 길어야 100년. 최고장에는 '노화'라는 항목도 함께 적혀 있다. 소도 때려눕힐 정도로 강인한 힘도,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미색도 노화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최근 외국에서는 안락사 문제가 새삼 큰 이슈가 됐다. 질 패로우라는 이름의 75세 여성이 이달 초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안락사 주사요법에 의해 생을 마감한 데 따른 일이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스위스에서도 그녀처럼 비교적 건강한 사람이 안락사를 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한 그녀는 죽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 나이 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다. (늙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며 끔찍하다."
패로우처럼 안락사를 택한 것이 옳은 일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많은 노인들이 죽는 것보다 오히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죽음과 관련해 이달 초 이탈리아 남부의 소도시 셀리아에서는 이색적인 조례가 제정되어 이목을 끌었다. 이름하여 '사망 금지 조례', 죽음을 불허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례가 발효된 이달 5일 이후 셀리아에서는 죽음이 '법률적으로' 금지됐다. 그렇다면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누구나 언젠가는 위반할 수밖에 없는 '악법'이 아닌가.
장난인가 싶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주민 중 60%가 75세 이상 노인이어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시당국은 건강검진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정기건강검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더 걷는 등 불이익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이 도시 시장은 "사망을 금지한 것은 (오래 살고픈 생각이 없어) 건강을 챙기지 않는 노인들이 많은 데 따른 것이다. 절대 장난이 아니며 심각하게 만든 조례"라고 했다.
살맛 나는 곳이라면 누구든 오래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 입장에서 힘겹기는 우리나라만 한 곳도 드물다.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 20년 후쯤부터는 농촌에서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세상이 예고되어 있다. 입법취지대로라면 셀리아시의 사망 금지 조례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더욱 절실한 규범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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