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통령은 재임 중 사면권 극히 절제
221만여 명 광복절 특사는 사면권 남용
대규모 사면 후엔 교통사고 큰 폭 증가
법 절차 무력화…국민에게 후폭풍 전가
미국 헌법 해설서는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많은 권한 중 가장 제약이 적은 권한이 대통령의 사면권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은 장관은 물론 어지간한 행정부 고위직 하나 임명하는 데도 의회의 온갖 간섭(?)에 시달린다. 반면 사면은 탄핵의 경우를 제외한다는 문구 외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왕조 시대 영국의 경우 사면은 국왕의 독자적 권한이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법 적용이나, 정치적 목적의 처벌을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의회가 발달하면서 왕의 사면권도 일정한 제약이 있게 된다.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 규정은 영국의 유례를 참고한 것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독자적 권한이지만 탄핵의 경우를 제외함으로써 의회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탄핵을 제외하고는 사면권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는 게 미국 대통령이다. 하지만 실제는 극히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8년간 불과 13명을 사면했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 역시 8년간 11명 사면에 그쳤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재임 4년간 단 3명만 사면했다. 그에 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마약사범 등 총 89명을 대상으로 감형 조치를 내렸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재임 중인 1966년 80명을 감형한 이래 반세기 만의 최대 규모이다. 반대 진영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분명한 정치적 어젠다를 가지고 사면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마약사범에게도 종신형을 선고할 정도로 가혹하고, 흑인 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운영되는 미국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사면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를 본뜬 우리 헌법도 대통령의 사면권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의 사면권은 미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일반사면을 행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면, 감형 및 복권은 '법률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제한도 있다. 사면법에 의해 법무부의 건의, 사면위원회의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미국 대통령의 경우에 비해 훨씬 번거롭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수십만, 수백만 명을 한꺼번에 사면하는 등 남용되기 때문이다.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고 했던가.
14일 이루어진 광복절 70주년 사면은 그런 기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물론 재벌 총수 등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최소화하고, 정치인을 사면하지 않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200만 명이 넘는 교통사범을 포함, 221만여 명을 대상으로 초대형 사면 조치를 취한 것은 명백한 사면권 남용이다. 아무리 단속해도 음주운전, 난폭운전이 줄지 않는 것은 이런 특별 조치를 기대하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인 법적 절차를 단번에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선심성이겠지만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선량한 국민에게 전가된다.
대규모 사면 후에는 교통사고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경찰청 통계가 있다. 1998년 사상 최대인 532만 명의 특사를 단행한 후인 1999년의 경우 전년보다 교통사고가 15% 급증했다. 481만 명의 특사가 행해진 2002년 2만4천983건이었던 음주교통사고는 2003년 3만1천227건으로 폭증했다. 대통령의 사면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무리 법에 의한 제한을 두어도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과 권력층의 각성이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 아니고, 국민이 헌법에 의해 대통령직에 부여한 권한이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이 극히 절제된 형태로 사면권을 행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법치주의의 교정'을 위한 사면권이 도리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후보 시절의 다짐과 원칙을 대통령부터 되새겨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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