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마지막 국정 교과서의 1단원에는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쓴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라는 글이 있었다. 황소개구리가 강력한 힘으로 토종 생물들을 잡아먹으면서 토종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후, 이와 마찬가지로 외래어, 외국어가 순우리말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글이다.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핵심은 외래어, 외국어가 순우리말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인데, 앞부분에 황소개구리 이야기를 넣은 것은 그 원리를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는 것에 빗대어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 빗대어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방법을 유추(類推)라고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옛 사람들은 하나의 글쓰기 양식으로 정착시키기도 하였다.(유추의 방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펴는 형식의 글을 '설'(說)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유추의 방법은 이해를 돕는 것일 뿐, 정확한 논리적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앞의 예로 말하면 황소개구리가 토종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 외래어, 외국어가 순우리말을 대체하여 순우리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언어와 황소개구리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논리가 적용되기는 어렵다. 엄격한 논리를 요구하는 법률에서는 유추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에 이야기하는 것이 뒤에 이야기하는 것의 직접적인 근거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을 좋은 글이라고 인정을 하는 것은 그 유추가 상황에 꼭 맞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소개구리가 토종 생물들보다 힘이 세다는 것은 외래어, 외국어가 순우리말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것과 논리적으로 대응을 한다.(원래 만들어진 나라에서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왔으니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토종 생물들은 없어지고, 황소개구리만 남은 생태계는 외래어, 외국어가 순우리말을 대체하는 미래와 대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그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추의 방법은 그 논리가 정확하게 대응이 되지 않으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때로는 궤변이 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식사를 할 때 잔소리를 하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데."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 속에는 '개도 안 건드리므로, 개보다 더 고등한 생물인 사람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라는 논리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논리로 말하자면 "개니까 안 건드리는 거고, 너는 사람이니까 건드리는 거야."가 된다. 개에게는 밥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밥 먹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사람은 밥 먹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며,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앉아서 잔소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밥 먹을 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며칠 전 EBS로부터 사설 입시기관의 한 강사가 EBS 교재에 이의제기를 한 것에 대한 판정을 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문제의 내용은 윤리적 이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한 것을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사례에 적용하는 문제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도덕적 의무를 지키는 것만이 이익이 된다.'는 답지에 대해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손나은만 에이핑크다.'라는 것과 같죠. '만'을 썼기 때문에 이 문제는 오류입니다."
오류라고 말하는 근거를 자세히 보면 '(여섯 명의 멤버 중에) 손나은만 에이핑크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옳은 것 가운데 하나만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한다/ 안 한다'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혜리와 손나은 중에) 손나은만 에이핑크다'에 해당한다. 뭔가 그럴싸하지만 약간 찜찜한 것들은 대부분 이렇게 잘못된 유추를 사용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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