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층집 소녀

첫사랑의 기억 있으세요? 풋풋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밤잠 못 이루던 때가 있습니다. 어설픈 시절의 순수한 내가 떠올라 웃을 수 있는 첫사랑 말입니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본 감정의 아찔함은 현기증 같은 알 수 없는 묘한 향기 같은 것을 동반합니다.

'저녁 교회 종소리 노을에 퍼지고, 성급한 거리 위에 불빛이 눈을 뜰 때면, 내 기억의 동네에도 켜지는 불빛,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내 첫사랑 그녀. 얼마나 휘파람을 연습했는지 단지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노래방을 정말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불러보는 윤종신의 '이층집 소녀'. 단순한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가 아련한 첫사랑을 기억하게끔 하는 노래입니다.

비가 하루 종일 오고 몸도 늘어지던 며칠 전이었습니다. 비 오는 바깥이 보이는 연습실 창문 가에 서서 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는데, 라디오에서 '이층집 소녀'가 흘러나왔습니다. 아는 노래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다 옛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라 혼자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한참을 넋 놓고 있었나 봅니다.

비 오는 날 저녁 우산 없이 뛰어가던 첫사랑 그녀와 그녀를 보며 가슴 뛰던 내가 그리웠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반추해보게 됩니다. 그때의 순수했던 모습과 비교하면서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아주 조금씩 잊히는 것이 안타깝고 슬퍼집니다.

매번 계절이 바뀌고 그와 함께 소중했던 기억들이 바래지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때, 그래서 서글플 즈음, 대부분의 미화된 기억은 떠오르게 되나 봅니다. 잘 기억 나지 않는 부분을 내 맘대로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시절 이야기는 무용담이 되기도 하고, 세상 가장 슬픈 사랑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첫사랑 상대는 청순하고 순결한 '건축학개론'의 수지가 되기도 합니다.

아프지만, 첫사랑은 실패한 사랑이라는 다른 이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되돌아볼 때 추억으로 완성됩니다. 실패한 사랑이기에 더욱더 되돌아보고 싶은 건 아닐까요? 이런 '되돌아보기'는 사랑과 인생에서 독일까요? 약일까요?

현실의 공기 속에서 첫사랑은 조금씩 늙고 또 변하고 있습니다. 기억 속에 상대를 방부처리 할 수 있는 것은 기억에 가두거나 혹은 죽어 영원히 늙지 않는 방법뿐입니다. 우리는 첫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맘 속,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 보관합니다. 그러다 저처럼 비 오는 날, 우연히 듣게 된 '이층집 소녀' 같은 노래 등의 장치와 함께, 첫사랑의 기억이 홀연히 나타나 언제든 '순수'의 착각에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을 첫사랑. 뒤돌아보지 말아야 하지만 뒤돌아보게 되는 첫사랑의 비밀이 아마 거기에 있나 봅니다. 행복한 첫사랑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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