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참 잘한 일, 참 잘된 일

하마터면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전반을 허송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후반기를 시작할 뻔했다. 국민들은 이런 평가에 동조했다. 40% 아래로 내려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 방증이다. 인사의 실패와 위기대응 능력 부재,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라는 비판을 골고루 그리고 많이도 받았던 2년 반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막판에, 정말 공이 울리기 바로 직전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아슬아슬했다. 그것도 아주 '큰 놈'으로 한 방을 날렸다.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선 장장 무박 4일의 마라톤협상을 통해 북한의 명시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결연함과 고집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반전이라고 감히 표현하는 건,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대한민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임이 분명한 분단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분단에 따른 국력의 낭비가 얼마인지는 계산도 안 된다. 우리 사회 거의 대부분의 모순과 왜곡은 그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분단으로 귀착된다. 그 분단의 역사에 이번 8'25 합의가 한 획을 그은 것이다. 필자는 8'25 합의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남북관계사의 대사건 일지에 한 줄을 더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일거에 해빙무드로 전환시킨 제일 큰 공은 기꺼이 하나가 되어 우리 군을 향해 격려와 성원을 보내준 국민들이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 그다음은 북한의 겁박과 억지 주장에도 추호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은 박 대통령이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남북한 문제가 원래 다 그렇게 되게 돼 있었다는 평가절하도 있을 수 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과로만 본다면 비슷하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이번에는 달랐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을 쓰지 않았다. 적당하게 '마사지'를 하고 타협도 하지 않았다. '원칙'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 바로 정답이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지뢰 도발을 비롯한 도발 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장은 피한다고 해도 또 싸움을 걸어오고, 말과 총포로 협박을 가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는 끊어버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은 또 "과거와 같이 북한이 도발 상황을 극대화하고 안보에 위협을 가해도 결코 물러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시 못을 박았다. 남북협상에 임하는 우리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박 대통령의 이 원칙론은 북한과의 기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결국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합의된 남북합의서는 우리의 요구를 다 담았다. 두루뭉술하지 않았다. 북한이 도발의 주체라고 분명하게 밝힌 사실상의 사과를 처음 받아냈다.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다'며 북측이라고 명시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낸 2002년의 연평해전에서 북한은 "연평도 포격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남의 이야기하듯 했었다. 확 다른 것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휴전선의 긴장도는 낮아졌다. 북한의 준전시 체제도 해제됐다. 남북한 간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해빙과 화해의 분위기가 싹틀 것이다. 이 상황이 거저 얻은 게 아니라는 것만은 기억해야 한다.

아무튼 8'25 남북합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참 잘한 일이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참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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