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성낙인 서울대 총장

"대통령·총리 이원정부제로 권력분담…개헌 논의 내년 총선 직후"

▷1950년 경남 창녕군 대지면 효정리 출생 ▷대구 복명초
▷1950년 경남 창녕군 대지면 효정리 출생 ▷대구 복명초'대구중'서울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과 및 동 대학원 법학석사 ▷프랑스 파리2대학 법학박사 ▷영남대 교수 ▷서울대 법대 학장 ▷한국공법학회 회장'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세계헌법학회 한국지부장(현) ▷서울대 총장(현)

지난해 7월 부임한 성낙인(65) 서울대 총장은 '선(善)한 인재'와 '선한 공동체'를 강조했다.

젊은이들은 아집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되(虛心), 대자연을 품는 기(氣)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똑똑하고 차가운 지성에다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태야 공동체를 이끄는 참인간이 될 수 있다는 '선한 인재론'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에게 A학점을 받은 학생 대신 전면 장학금을 주면서 이끈 교육자로부터 서울대의 미래와 참인간 교육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대 법인화 4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대학이 자치정신을 살려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는 취지에서 법인화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법이 시행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잇따라 나타났다. 경기도 수원시가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수원의 농업생명대학 땅에 대해 올해 세금 39억원을 매겼다. 전남 광양시와 구례군에 걸쳐 있는 백원산 자락에 일제강점기부터 갖고 있던 서울대 보유의 연습림에서 100년 이상 수목과 관련해 연구하고 자료를 축적해 왔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내놓으라고 했다. 서울대가 국가기관이 아닌 법인이 됐다는 이유다. 대학 내 중앙도서관과 규장각에 국보급 문화재가 있는데, 이것도 문화재청이 반환하라고 한다.

-여기에 대한 서울대의 입장은.

▶서울대가 법인화했더라도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립대학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국민 세금 일부를 떼서 지방자치단체 세금을 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해 수원 땅에 매긴 세금과 관련해 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대학 자치, 대학의 학문 발전 등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세계적인 국립대학 법인 모델을 만들겠다. 국가 시책에 부응하고 공무원 신분도 포기하면서 한국 역사상 없었던 새로운 대학의 모델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법인화의 장점은.

▶법인화 이전에는 예산 세부 항목별로 이용(移用)이나 전용(轉用)이 불가능했지만, 현재는 필요에 따라 가능하다. 예산 운용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대학 자체의 수익 모델을 확대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학 발전재단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IT) 쪽을 활용해 창업과 특허로 성공한 분들이 대학에 수십억원씩 기부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총장 취임 후 강조해온 '선한 인재상'이란.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오지만, 똑똑함에다 착하고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야 한다. 서울대 출신은 40대가 되면 대다수 관리자가 된다. 조직관리자가 선한 모습을 보여줘야 선한 조직이 되고, 선한 사회가 되고, 대한민국이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된다.

-선한 인재 육성을 뒷받침하는 교육 방안은.

▶다양한 봉사활동과 인간을 주제로 한 강좌 등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가 소속된 관악구와 야학, 봉사활동을 비롯해 약 100가지의 공동 행사를 벌이고 있다. 농촌 봉사와 해외 오지 봉사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9월부터 '인간학개론'이라는 교양강좌를 개설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주제로 인문'사회과학 교수 3명이 팀을 꾸려 수업을 진행한다. 내년부터는 '무엇이 참행복인가'를 바탕으로 한 '행복학개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생명학개론' 등 강좌도 개설할 계획이다. 단순한 지식의 나눔보다 성찰의 학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대 입시 전형 방향은.

▶내신과 수능 비중의 적절한 균형, 지역균형선발 확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입시가 너무 복잡해 '고3 담임은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도, 서울대 교수는 보내지 못한다'는 농담이 생겨날 정도다. 수시모집과 지역균형선발은 내신에 방점을 두고, 정시모집은 수능에 방점을 뒀다. 대신 수시모집과 지역균형선발 비중이 합쳐서 75% 정도다. 특히 지역균형선발 확대는 작년에 선언한 뒤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지역균형선발 확대 방식은.

▶내년부터는 음악대학, 미술대학, 자율전공학부까지 포함해 모든 학문 영역에 지역균형선발을 하도록 했다. 대도시든, 시골이든 지역별로 한 학교에 2명씩 추천을 받아 지역균형선발을 하고 있다.

섬 지역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고교생들도 학업성취도가 높을 경우 서울대로 뽑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울릉도를 비롯해 전국 7개 섬 지역 고교에 입학사정관과 입학관리본부장 등이 찾아가 학생들을 모으도록 했다.

-소외 계층에 대한 지원책은.

▶대도시 부유한 가정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공부를 잘한 '잘 가꿔진 보석'도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들 못지않게 학업성취도를 보여준 '숨은 보석'에 대한 교육도 잘 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대학의 과제다.

내가 법대 학장으로 있을 때 학생 1명이 집안이 어려워 입학을 포기하고 등록금과 숙식이 제공되는 다른 대학으로 가려고 해 설득했다. 입학해서도 과외를 3개나 하니 제대로 수업도 듣지 못해 학사경고까지 받았다. 내가 재량권을 발휘해 A학점을 받은 학생을 제치고 이 학생에게 전면 장학금을 줬더니, 성적도 점점 올랐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해 현재 판사가 돼 있다.

사람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재벌 부럽지 않다. 지방에서 올라오면 생활비가 많이 든다. 현재 학부 학생 약 800명이 차상위 계층이다. 이들에게 월 15만원 안팎의 기숙사를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올해 3월부터 월 생활비 30만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대가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학생과 교수가 모두 세계인으로서의 안목을 갖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현재 세계 40개국 500명의 외국 학생들이 서울대에 와서 공부하는 한편, 우리 학생들도 모스크바, 베이징, 도쿄, 워싱턴 등지로 나가고 있다. 내가 취임 후 런던, 파리, 마드리드, 베를린 등지로 교환학생 대상지를 넓혔다. 학생들은 외국에서 봉사대로 봉사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세계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

교수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내놓고 있다. 이번 달에 기계공학을 하는 공과대 교수 두 분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한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실었고, 하버드대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논문의 주저자가 우리 대학 교수였다. 교수들의 연구 경쟁력을 높이는 '노벨상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후진들에게 바라는 점은.

▶기(氣)와 꿈을 키우고, 아집을 버려야 한다.

도시화되면서 젊은이들이 좁쌀처럼 작아졌다. 대자연을 품에 안는 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산골이나 섬, 바닷가에서 기를 키운 사람들이다. 미래의 한국 대통령도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큰 꿈을 품은 이들이 돼야 한다.

젊은이들은 아집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허심(虛心)을 배워야 한다. 선(善)의 반대인 독선을 버리고 함께 가는 사회, 즉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동선, 공동체적 가치가 중요하다.

◆헌법학자로서 본 개헌 방향…'대한민국은 민주적 지방자치 공화국' 지방자치 이념 담아야

헌법학자인 성낙인 총장은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담하는 이원정부제 개헌이 필요하고, 세계화와 지방자치의 이념을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개헌논의는 내년 총선 직후가 적기라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제도의 균형이 이뤄져야 하고, 특히 권력구조의 균형이 무너지면 곤란하다"며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고,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해 모든 것을 기대서도 안 된다"고 대통령중심제의 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 외교, 국방, 통일 등에 대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큰 틀에서 깊이 고민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문화, 재정 등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분야는 내각 브레인들을 활용하고, 내정의 갈등은 내각과 의회가 소통해서 풀어야 한다"며 "내치는 책임총리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성 총장은 현행 헌법의 일부 위헌 요소와 1987년 개헌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1971년 당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했던 대법원이 국가배상법에 규정된 '군인'군무원에 대한 이중배상 배제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는데, 3공화국이 이듬해 유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위헌 결정을 한 판사들을 전원 탈락시킨 뒤 위헌 판결이 난 국가배상법을 그대로 헌법에 적용해버렸다"고 말했다. 또 "87년 헌법은 2개월간 운영된 8인 정치회담의 산물인데, 당시 헌법학자들은 없었다"며 현행 헌법이 '체계정합적인 측면의 흠결'을 안고 있다고 했다.

성 총장은 헌법이 담아야 할 가치로 ▷세계화 이념 ▷지방자치(지방화) 이념 ▷정보화 사회에 따른 기본권 변화 등을 꼽았다. 특히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적 지방분권 공화국'이라는 선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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