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군대 안 가면 안 돼?"
10살 난 아들이 몇 년 전 뜬금없이 던진 질문이다. 그 후에도 가끔 이 얘기를 불쑥불쑥 꺼냈다. 그때마다 묻는 이유를 물었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대화 중에 나온 얘기를 종합해 유추하면 전쟁이 무섭고, 군대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철부지 아이의 괜한 걱정쯤으로 생각하고 넘겼지만 신경은 쓰였다. '전쟁이나 군대 얘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벌써 군대 가는 걸 걱정하고 겁을 내면 안 되는데' '우리 아이만 이러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다면?'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씁쓸해지기도 했다.
연평도'천안함 피격 사건 등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총격전을 벌이고 죽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북한의 간헐적 도발이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됐다. 안 그래도 애지중지 키워 자기밖에 모르는 요즘 아이들이 일찍부터 북한, 전쟁에 대한 두려움까지 가진다면?
북한도 남한 청소년'젊은이들을 쉽게 본 것 같다. 최근 북한의 지뢰 및 포격 도발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상황이 벌어지자 북한이 가장 먼저 꺼낸 카드 중 하나도 바로 '심리전'이었다. 북한은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괴뢰군(대한민국 국군) 사병들이 병영을 탈주하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청년들은 괴뢰군 입대를 피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선전했다.
또 '남조선 주민들 속에서 전쟁 공포증이 만연했다'거나 '예비군 훈련에 동원된 사람의 절반 이상이 훈련장을 이탈했다', '예비군 훈련생들 속에서 극도의 공포와 불안이 감지됐다'며 호도했다. 남한 젊은이들은 안보의식이 부족하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판단, 불안감을 유발해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겠다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완벽한 오판이었다. 아마 혼쭐이 났을 것이다. '자칫 잘못 자극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선전은 남한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오히려 안보의식을 더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잠재돼 있던 애국심과 정의감이 깨어난 것이다.
현역 군인들은 전역을 연기하고 휴가를 반납했다. 예비역들도 군복과 군화를 끄집어냈다. '나라가 부르면 달려가겠다' '대한민국을 지키겠다'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언제든 준비돼 있다' '대기 중'이라는 글과 함께 군복 입은 자신의 모습이나 군복, 군화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이는 북한엔 아주 위협적이고, 협상 대표들에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을 것이다.
물론 최근 상영된 영화 '연평해전'의 영향으로 북한에 대한 악감정과 애국심이 충천해 있었을 수도 있다. 또 전쟁의 잔혹상, 참상을 알지 못한 젊은이들의 철없는 호기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보여준 청년들의 모습과 행동은 든든했고, 가슴 뭉클했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20년 전의 외환위기가 또다시 닥친다면 '대한민국호'는 침몰할 것이라고. 이제는 집 안 장롱 속 꼭꼭 숨겨놓았던 금반지를 꺼내 들고 긴긴 줄을 서는 국민은 없을 것이고, 금니까지 뽑아들고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 역시 내심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북한 도발 사태를 겪으면서 그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0년 전 국채보상운동(1907년)의 정신, 20년 전 외환위기(1997년) 금 모으기 운동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고, 젊은이들에게도 계승돼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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