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한국 사회사/윤충로 지음/푸른 역사 펴냄
올해는 베트남 전쟁 종전 40주년이고, 지난해는 한국군 베트남 파병 50주년이었다. 우리나라는 1964년 9월 이동 외과병동, 태권도 교관을 파견한 데 이어 1965년 3월 비전투 병력인 비둘기 부대, 1965년 10월 전투부대인 청룡'맹호부대, 1966년 9월 맹호'백마 부대 등을 파병했다. 총 파병 기간은 8년 6개월이었으며 병력은 32만 명에 달했다. 1만6천여 명의 한국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많은 군인이 고엽제 피해와 같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정치, 외교, 경제라는 거시적인 면에서 베트남 파병을 바라보는 대신 전쟁과 더불어 변해갔던 사회, 전쟁이 만들어낸 개인적 회한과 사회적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참전 전투병과 파월 기술자, 대학생 위문단, 파월장병 교육장교, 한국군에 피해를 당한 베트남 민간인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개인적 기억, 전쟁으로 인한 삶의 변화, 전쟁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최모 씨는 베트남 전쟁 당시 운전병으로 복무하고 제대한 뒤 파월 기업이었던 한진상사에 취업했다. 그는 당시 한진에서의 업무를 "완전히 군인이랑 같았어요. 물품이, 보급품이, 그걸 실어 나르니까. 현지 제대해서 취업한 우리 기술자들에게 방탄복을 주고 총을 한 자루씩 줬다"고 말한다.
월남 파병과 현지 취업은 최 씨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고향인 정읍군에서 자신이 '월남의 본보기' 즉, 월남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신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기술이 파월이라는 질곡을 안겨다 주었지만 이후 스스로를 타인과 구별 짓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고, 그가 송금한 돈으로 아버지가 고향에서 땅을 사고, 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토대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그는 그야말로 '가장'(家長)이 되었고, 시골 부자가 되었다. 그에게 개인적 가난 극복은 국가의 성장으로 확장되고, 이 점에서 개인과 국가는 합일된다.
파월 기술자 윤모 씨에게 베트남 취업은 기회였다. 그는 "기회가, 내가 아등바등 살다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월급을 많이 탈 수 있는 기회가…. 그래서 가는데 위험 같은 것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번 가보자. 내 주변에서는 많이 부러워했어. 월급을 따져도 집을 장만한다든가, 혹은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는 그것밖에 없는 걸로 그렇게들 알았지. 가고 싶은 사람들은 엄청 많았는데 나 하나 갔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당시 베트남은 가난을 떨치고 부를 일구는 통로였다.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은 장병들에게 "수당을 절약해 부모님이나 자기가 꾸려가는 가정의 삶에 보탬이 되도록 80%는 꼭 송금하라"고 장려하기도 했다.
전쟁고아인 한모 씨에게 베트남 전장은 어린 시절의 배고픔과 분노, 외로움, 고통을 쏟아내는 공간이었다. 베트남에서 그는 동료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웠고, 이를 통해 전장의 권위를 쌓을 수 있었다. 전우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이 커졌고, 언제나 모범을 보였다. '국가를 위해 싸웠으니 죽으면 국가가 거두겠지'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여 베트남에서 3년을 복무했다.
그러나 마침내 군복을 벗어야 했을 때, 더는 연장할 수 없게 됐을 때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보병이던 그에게는 현지제대와 현지취업의 기회도 없었다. 1969년 9월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고 귀국선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을 했고, 사업도 했다. 그러나 1987년 12월 참전군인 단체를 결성하면서 그의 삶은 '월남시절'로 완전히 기울고 말았다. 참전 군인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확성기를 틀고 군복을 입고, 순찰 방범을 돌았다. 사업은 뒷전이었다. 베트남 참전 경험은 그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가족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부인과 이혼했다. 쌓여가는 것은 회한뿐이었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돈 안 생기고 버리는 데만 찾아다니니 가정생활이 안 된다고. 개인적으로 자부심은 있어요. 하지만 누가 알아줘요? 내가 훈장 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사람들은 요만큼도 안 쳐줘요."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참전의 정체성, 역사적'사회적 배경과 참전과정, 전쟁동원과 전쟁의 일상화, 파월 기술자, 전쟁의 기억, 전후 참전군인의 집합적 정체성 형성과 동원,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 등을 담고 있다. 402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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