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한 마리가-김정희
나무마다 부는 훈풍에 잎새가 나란터니
몇 봉우리 서쪽에는 그 단새 시커먼 비
쑥보다 더 새파란 청개구리 한 마리가
파초 끝에 뛰어올라 까치처럼 깍깍 우네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正濃黑雨數峰西(정농흑우수봉서)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예)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원제: 驟雨(취우'소낙비)
여름이다. 느닷없이 훈풍이 불어온다. 나무, 나무마다 수천 수만의 시퍼런 잎새들이 쏴아~ 쏴아~ 은빛 파도 소리를 내며 일제히 하얗게 뒤집어진다. 곧 소낙비가 내린다는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몇 봉우리 서쪽에서는 시커먼 먹물이 든 소낙비가 후두두두 다다다다 쏟아지기 시작한다. 소낙비는 마치 3단 높이뛰기 선수처럼 단숨에 산봉우리들을 껑충껑충 뛰어 넘어오더니, 온천지에 물 화살을 발사하고 있다. 메마른 대지를 시퍼렇게 난타하는 빗소리, 빗소리, 저 빗소리….
"청개구리가/ 토란잎에서 졸고// 해오라기/ 깃털만치나/ 새하얀 여름 한낮// 고요는/ 수심(水深)보다/ 깊다." 김춘수 시인의 '午睡'(오수)라는 작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청개구리는 새하얀 여름 한낮, 토란잎 위에서 콜콜 낮잠 자는 아주 정적인 청개구리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쓴 위의 시에서도 청개구리 한 마리가 등장한다. 비 맞은 쑥 잎보다도 훨씬 더 새파란 청개구리다. 하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청개구리는 3단 뛰기 선수 청개구리다. 그는 마구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장대도 없이 3단 높이뛰기를 정말 과감하게 시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 몸의 수십 배를 훌쩍 솟구쳐 키 큰 파초 잎의 맨 꼭대기에 금세 폴짝 뛰어오른다. 왜 그랬을까? 이 세상 제일 높은 곳에서 장대비를 통째로 맞으며 정말 통쾌하게 울고 싶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므로 그는 가쁜 숨을 할딱거리며 세상 전체를 눈 아래다 두고 목청이 터지도록 울어제낀다. 그 작은 몸집으로 그 무슨 덩치 큰 까치처럼 깍깍 깍깍, 꺼꾸꺼꾸 꺼꾸꺼꾸….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한밤중에 영천을 관통할 때. 옥상 꼭대기에 올라가서 엉엉 대성통곡을 하며 한바탕 춤을 추던 청개구리가 한 마리 있었다. 문득, 떠오르네, 그 엄청난 바람, 그 엄청난 폭우 속에서 풀쩍풀쩍 뛰며 절규를 하던 그 정말 이상한 청개구리가. 그가 지었다는 되다만 시 한 수를 양념삼아 곁들여 볼까나. "내 방금 낮 꿈에서 작은 청개구리 되어 연잎에 폴짝 뛰어 팔을 베고 누웠더니 바람도 살랑 바람에 호사도 참 좋을시고// 후두두두 다다다다 소낙비 냅다 때려 얼씨구 절씨구나 어절씨구 춤을 추다, 연잎이 왕창 꺾어져 기절초풍했죠,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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