胡桃(호도)나무 잎사귀만한 뜰과
胡桃나무 잎사귀만한 툇마루에
무수한 胡桃나무 잎사귀가 퍼어렇게 잠겨오는 酒店(주점)
그러한 空間(공간)의 日暮(일모)에
때에 저린 툇마루의 어두운 光澤(광택) 속으로
잠겨드는 무수한 퍼어런 胡桃나무 잎사귀 위에
흡사 목마른 청개구리와도 같이 엎디어
그 슬픈 比重(비중)의 막걸리를 빨던
그러한 日暮에
意味(의미) 없이 웃음짓는 나의 稀薄(희박)한 表情(표정)과
나의 表情보다는 훨씬 확실한 빈 막걸릿상의 陰影(음영)만이
胡桃나무 무수한 잎사귀 아래
짙어오는 어스름 속에 놓여 있는
아 그러한 日暮에
(전문. 『하회에서』. 민음사. 1977)
이 시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에 발표된 시다. 이 시의 무대가 된 곳은 대구 향촌동의 「석류나무집」이라는 막걸리 집. 시의 이 주점에는 지금 마종기 시인의 아버지인 아동문학가 마해송, 조지훈, 유치환, 허만하, 소설가 최인욱 등이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시인은 어느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집은 '석류나무집'으로 알려져 있었고 실지로 좁은 뜰 한구석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기도 하였지만 여름이면 그 뜰을 뒤덮다시피 한 큼직한 호도나무가 뜰 한가운데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집에 모이던 술꾼들은 좁은 툇마루가 아니면 돗자리를 깐 뜰에 앉아 술을 마셨다." 노을 지는 피란지 대구 향촌동의 막걸리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시인들의 마음이 어떠하였을지는 많은 상상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 시의 절정은 술을 마시는 모습에 대한 묘사다. "목마른 청개구리와도 같이 엎디어 그 슬픈 比重(비중)의 막걸리를 빨"다! 의미 없는 표정을 지으며 점점 차오는 취기와 슬픔을 느끼는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문제는, 65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의 시인은 '아름다운 폐인'이 되지도 못한 채 '그 어느 날의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황지우) 아, 청개구리처럼 엎드려 슬픈 막걸리를 빨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슨 전쟁으로부터 피란 온 것일까?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